"(전)준우야, 탯줄 자르게 해주는 감독님이 어디 있겠니?"
4일 롯데 자이언츠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를 앞둔 사직구장. 경기 전 롯데 양승호(52) 감독은 타격훈련을 마치고 더그아웃에 돌아온 외야수 전준우(26)를 붙잡고 "감독님한테 인사 안하냐"고 타박을 했다.
전준우는 6년의 열애 끝에 지난해 12월 김미경(28)씨와 결혼에 골인했다. 그리고 김미경 씨는 지난 1일 3.02kg의 건강한 딸을 순산, 전준우도 이제 '애아빠'가 됐다. 당시 양 감독은 치열한 순위다툼 중인데도 불구하고 주전 중견수 전준우에게 하루 휴가를 줬고, 덕분에 전준우는 아내의 해산을 병원에서 함께 할 수 있었다.

비록 롯데는 전준우가 빠진 1일 경기에서 패했지만 바로 다음 날 경기에선 전준우가 홈런포 2방을 가동해 7-2로 승리를 거뒀다. 지난 6월 13일 사직 두산전 이후 81일만의 홈런이었다. 양 감독이 배려해 준 것을 홈런 두 방으로 보답한 것이다.
양 감독은 전준우에게 "탯줄 자른 야구선수는 너가 최초일 것"이라고 한 마디 했고, 이에 전준우는 "다시 한 번 감사하다"면서 "우리 감독님 기사 좀 써달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리고 4일 경기에서 전준우는 다시 솔로포를 가동, 팀의 4-2 역전승을 도왔다. 2경기 연속 홈런, 아빠의 힘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프로야구 선수는 가정에 충실하기 힘들다. 1년 가운데 시즌이 진행되는 7개월은 원정경기로 집을 비우기 일쑤고, 시즌이 끝난다 해도 이런저런 훈련으로 가족과 함께하지 못한다. 명절도 야구와 함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추석때는 정규시즌 혹은 포스트시즌이 한창이며, 설날은 대개 해외 전지훈련에 참가한다. 명절을 가족과 함께 보내지 못하는 건 야구선수의 비애 가운데 하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야구선수가 명절을 쇤다는 건 주전선수가 아니라는 말도 된다.
한 선수는 딸과 관련된 가슴아픈 일화를 털어놓기도 했다. 팀의 주전선수로 활약해 자연히 집에 들어가는 날이 적었고, 때문에 아직 어린 딸은 아빠의 얼굴조차 잘 모른다고 했다. 그는 "어느 날 경기가 끝나고 밤 늦게 집에 들어가 자고있는 딸아이를 안아 얼굴을 부볐다. 그런데 깬 아이가 깜짝 놀라서 자지러지게 우는 게 아닌가. 그러다가 경기까지 해서 간밤에 응급실에 간 적이 있었다. 그럴 때는 야구선수로 비애를 느끼기도 한다"는 말을 했다.
대한민국에서 야구선수로 아빠 역할까지 함께 잘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에 올스타전에 출전했던 다른 한 선수는 "올스타 브레이크 때 제대로 쉬지를 못했다. 올스타전 나가느라 뛰었고, 하루 휴식일 있는 날은 애들 데리고 워터파크 가서 놀아주느라 힘들었다"며 부르튼 입술을 보여주기도 했다.
딸의 탯줄을 자를 기회를 얻은 전준우가 웃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중에 바빠 얼굴을 많이 못 본다 하더라도 딸에게 "내가 너 태어났을 때 탯줄을 잘라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나마도 홈경기가 있을 때 아내의 진통이 시작돼 자리를 함께할 수 있었다. 양 감독의 "이제 우리 프로야구 선수들도 가족을 최우선으로 놓을 때도 됐다"는 말, 언제쯤 현실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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