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soul을 만나다]김홍범 “제 옷은 마치 도도한 여자와 같아요”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2.09.05 10: 03

젊은 그가 반갑다. 컨셉코리아라는 글로벌한 행사에 신인에 가까운 디자이너가 참석하게 됐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미래의 패션이 글로벌해질 수 있다는 증거가 되는 셈이다. 이 반가운 젊은 디자이너는 30대 중반의 남자.
남자라고는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여자 옷을 만드는 남자 디자이너의 모습은 상당히 여성스럽다. 기자 역시 그럼 기대감(?)으로 그를 만났으나 재미있게도 그는 소위 말하는 ‘상남자’ 였다.
이 상남자는 바로 김홍범 디자이너. 혹시 이름을 듣고 낯이 익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온스타일의 디자이너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시즌 3에 출연했었다. 하지만 기자는 이 프로그램을 보지 못했으므로 김 디자이너와는 사실상 어떤 경로로든 첫 대면이다.

단순히 첫 몇 마디를 나누어서는 여자 옷을 디자인하는 감성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잘 느껴지지 않아 흥미로웠다. 또 여자의 감성을 얼마나 아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의 이력은 궁금증을 해소해 주기에 충분했다. 김 디자이너는 여성스럽지는 않았으나 가지고 있는 ‘감각’이라는 탤런트가 있었다.
▲ 뜻하지 않은 곳에서 재능은 발견된다
대부분의 패션 디자이너들은 패션을 전공하거나 아예 다른 분야를 전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김 디자이너는 독특하게 뷰티를 전공했다. 뷰티, 말만 들어도 남자의 영역이 아닌 것만 같은 곳이다. 학창시절에 미술, 음악 등 예체능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평소 워낙 옷 입는 것이나 자신을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다보니 뷰티학과 또한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타고난 끼는 어쩔 수 없는가보다.
“남들 눈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전혀 색다른 곳이 아니었어요.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제가 뷰티를 공부해야지 뭘 하겠어요?”(웃음)
끼를 지닌 이라면 뷰티를 공부하면서 가장 밀접한 패션 또한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김 디자이너 역시 마찬가지였다. 뷰티 공부를 마친 후 그는 또 다시 패션을 전공했고 오히려 뷰티 쪽보다 더 큰 재능을 발견하게 됐다.
우리는 항상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진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김 디자이너에게는 패션이 그런 존재였고 그는 현명하게도 그 순간 그것을 놓치지 않고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뷰티부터 패션까지 여자의 모든 것을 섭렵한 그가 생각하는 옷 잘 입는 여자는 어떤 스타일일까. 왠지 그 조건에 부합된다면 꽤나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 생각에 물었다.
“너무 과한 꾸밈과 화려함보다는 아주 심플하고 단정하지만 단 하나의 포인트가 있는 스타일링. 말하자면 차가운 태도의 여자라고 비유해야 할까요? 도도한 여자쯤 되겠네요.”
김 디자이너의 신념은 확실하다. 그의 저런 이상형이 바로 그가 론칭한 브랜드 ‘크레스에딤’ 콘셉트와 맞아 떨어진다. 그의 스타일은 한 눈에 봐도 차갑고 도도하다. 때론 그의 남성적인 성향이 묻어 매니시함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그 안에 분명히 존재하는 여성스러움.
이것이 김 디자이너의 옷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마력인 것 같다. 아마도 여성스럽지 않지만 또 그 안에 여자의 감성과 끼를 동시에 지닌 그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디자인이지 않을까. 그가 이번 컨셉코리아에 뽑힌 디자이너 중 한명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것은 충분히 입증된 셈이다.
▲ 콘셉트를 엿보니
김 디자이너의 이번 컨셉코리아 콘셉트는 ‘Extreme Weather' 험준한 날씨다.
“태풍, 허리케인, 번개, 이런 것들에게서 영감을 받았어요. 이것들에게 느껴지는 거칠고 날카로운 느낌을 커팅이나 프린트, 컬러 베리에이션으로 표현해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었어요.”
이토록 남성적인 테마로 여자 옷을 푼다는 것이 참으로 재미있는 콘셉트다. 그러나 이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임에는 틀림없다. 김 디자이너가 말한 모던하고 차가운 도도한 스타일. 이번 컨셉코리아에도 고스란히 묻어있다.
평소 그가 디자인적 영감을 받는 곳도 사실 이와 다르지 않다. 김 디자이너는 건축적인 요소를 좋아한다고 했다. 특히 건축적인 요소를 가지고 옷의 디테일에 많이 활용한다고.
“인테리어나 건축에 워낙 관심이 많아서 평소 건축 관련 잡지도 정기구독해요. 주변에 좋은 건물을 찾아다니면서 보기도 하고요. 아 그리고 저는 다큐멘터리 보는 것을 좋아해요. 동물, 지구 등 주제에 상관없이요. 보면서 또 영감을 얻기도 하죠.”
디자이너의 감성을 디자이너가 아닌 이상 그 누가 100퍼센트 이해하겠는가. 참으로 옷으로 연관되지 않는 요소들이지만 그렇기에 그는 기자가 아닌 디자이너인 것이다.
▲ ‘글로벌 프로젝트’ 거창한가요?
컨셉코리아라는 꽤 큰 행사에 참여하면서도 그는 자신을 갓 걸음마를 떼는 신인 디자이너라며 겸손해 했다. 그리고 여느 고집 센 디자이너들 같지 않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조언을 구할 줄 아는 꽤 괜찮은 디자이너다.
“아무리 여자 옷을 좋아해서 디자인한다고 해도 저는 남자예요. 때문에 여자들의 확실한 니즈를 찾는 것에는 한계가 있죠. 이 과정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늘 주저 없이 여자친구나 직원들에게 항상 조언을 구하는 편이에요.”
그의 옷이 남성적이면서도 여성스러운 이유를 찾는 순간이었다. 김 디자이너는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글로벌한 브랜드가 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했다. 그의 작업실 한쪽 벽에는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글씨가 붙어있다. 이는 언제나 목표를 잊어버리지 않고 상기시키고자 한 그의 노력이다.
“빨리 해외 시장에서 인정받는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트레이드 쇼 같은 곳도 없는 돈 털어서 나갔었고요.(웃음) 아직까지 국내에선 해외에서도 알 만한 글로벌 브랜드가 나오지 않은 것이 사실이죠. 하지만 향후 분명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주인공이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라면...더 무슨 말이 필요 하겠어요.”
이 젊은 디자이너의 패기와 열정이 한국 패션계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을 기자는 인터뷰 내내 받을 수 있었다. 향후 몇 년 내에 한국 디자이너의 이름으로 글로벌하게 인정받는 명품브랜드가 탄생하다면 그것은 행운의 ‘잭팟’이 아니라 김 디자이너와 같은 열정과 꿈이 만든 결과일 것이다. 
jiyoung@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