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배우는 역시 연기로 말할 뿐이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2.09.05 10: 13

[OSEN=손남원의 연예산책] 영화 '광해'를 봤다. 그리고 스크린 안에서 배우 이병헌을 만났다. 
연기 못하는 배우도 워낙 많다보니 연기파를 따로 분류하는 게 요즘 우리네 영화계다. 연기가 본업인 배우가 '발연기' 논란에 휩싸인다는 건 사실 창피하고 말도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출중한 외모와 섹시한 매력으로 대중의 인기를 얻은 깜짝 스타들이 캐스팅을 좌우하는 까닭에 배우들의 연기력 논란은 끊이질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이병헌은 연기 잘하는 스타배우로 손꼽힌다. 멜로와 액션,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두루 섭렵할 수 있는 연기자인데다 해외에서도 먹히는 한류스타다. 당연히 충무로 캐스팅 0순위다.

그런 그가 올 가을 사극으로 관객을 만난다. '광해, 왕이된 남자'다. 생애 첫 사극 출연에서 1인 2역을 했다. 암살 위협에 떠는 조선왕 광해이면서 그런 광해를 조롱하며 익살의 대상으로 삼았던 광대 하선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지 아이 조 2'와 '레드 2' 등에 연달아 출연하며 월드스타로서의 입지를 굳혀가는 이병헌으로서는 다소 모험이랄수 있는 선택을 했다. 왜 생소한 사극에다 그 힘든 1인2역일까.
배우 이병헌의 그동안 행보를 보면 답은 쉽게 찾을수 있다. 그는 톱스타로 올라선 이후에도 꾸준히 작품활동을 계속하면서 상업영화만 고집하지 않았다. '번지 점프를 하다' '쓰리 몬스터' '중독' '나는 비와 함께 간다' '악마를 보았다' 등 작품성을 보고 쾌히 출연한 수작들도 상당수다.
'악마를 보았다'에서는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마 장경철(최민식 분)를 더 악마적으로 상대하는 복수의 화신 수현(이병헌 분)을 맡아서 가슴 서늘한 잔혹 액션을 서슴지 않았다. 수현 역도 이미지를 먹고사는 한류스타들로서는 결코 쉽지 않았은 결정이었을 터다.
영화 속 강력계 형사 천호진의 대사처럼 "사람 아닌 짐승(최민식)을 상대하는" 수현은 말그대로 '아가X를 찢는 행위'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스트레스를 풀기위한 유흥으로 젊은 여자들을 강간하고 살인하며 인육까지 먹어대는 살인마들에게 그들 이상의 잔인한 수법으로 응징하는 게 영화 속 그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병헌에게 주어진 대사는 많지 않았다. 임신한 약혼녀가 장경철에게 난도질 당해 사지를 찢긴 초반부 이후로 그의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 오직 눈빛으로 얘기하고 온 몸으로 표현해야 할 수현의 내면세계만이 '악마를 보았다' 안에 가득 펼쳐진다.
이병헌은 김 감독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악마를 보았다'에서 가장 인상깊은 연기는 최민식의 광기가 아니고 이병헌의 서늘함이다. 자신의 모든 걸 비운채 냉정하고 차분하게 그이상 잔인하기 힘들 수준의 잔혹한 복수전에 나서는 국정원 경호요원 수현으로서다. 슬픔과 광기를 모두 물기 살짝 어린 두 눈에 담고서 관객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지금 악마를 보고 있는 거냐?"고.
'광해' 출연도 마찬가지 선상에서 이병헌이 가진 배우로서의 진정한 가치를 드러냈다.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왕 광해와 시도 때도 없이 방구를 뿡뿡 끼면서 주접을 떠는 광대를 오고간다니. '멜로의 달인' '액션의 대가' 평가를 받는 몸짱 이병헌이 선뜻 고를만한 역할이 아니겠다라는 게 일반의 시각이라면, 정작 본인은 "시나리오를 정말 재밌게 읽었다"고 출연 이유를 쾌도난마했다.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면 이병헌은 사라지고 오롯이 광해와 하선만 남는다. 왕과 광대라는 하늘과 땅 차이의 두 인간을 마주 대하면서도 이 둘을 연기한 배우가 하나라는 생각은 영화 초입부에 일찌감치 사라지고 스토리에 몰두하게 만드는 건 바로 배우 이병헌의 힘이다.
또 하나, 그의 목소리. 배우의 연기는 몸으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눈빛과 대사 하나로도 천변만화를 일으키는 게 참된 배우다. 광해와 닮아가는 하선의 말투. 결국 광해를 능가하고 하는 하선의 질타. 다큐멘타라 나레이션으로도 일가견이 있는  이병헌의 목소리와 톤, 감정이입이 아니었다면 정녕 힘들었을 배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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