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한 제도로 남을 것인가.
한화 류현진의 해외진출을 놓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삼성 류중일 감독이 류현진과 마찬가지로 포스팅시스템을 통한 오승환의 해외진출에 대해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류 감독은 5일 대구 LG전이 열리기 전 “감독은 성적을 내야하는 자리기 때문에 우리 팀의 마무리투수인 오승환의 해외진출에 OK사인을 내지 못하겠다”고 전했다. 이어 류 감독은 한화 구단이 류현진의 해외진출 여부가 신임감독의 의사에 좌우될 것이라는 말을 의식한 듯 “한화에 앞으로 어느 분이 감독으로 오실지 모르겠지만 과연 류현진의 해외진출을 승낙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신임감독 입장에서 류현진을 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고 예상했다.

한국 프로야구 규약 상 7시즌(타자의 경우 전체 경기수의 ⅔경기 이상 출장, 투수의 경우 규정이닝의 ⅔이닝 이상 등판, 혹은 1군 등록일수가 150일 이상인 경우, 한 시즌을 보낸 것으로 간주)을 활약한 선수의 경우 포스팅시스템에 의한 해외진출이 가능하다.
리그 최고의 선발투수와 마무리투수로 꼽히는 류현진과 오승환은 올 시즌을 마치면 7년째를 채우게 되고 포스팅시스템 하에서 미국, 혹은 일본 팀과 계약협상에 임할 수 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구단이 선수가 포스팅시스템으로 해외에 나가는 것을 승낙해야한다. 지난 시즌 투수 부문 4관왕과 함께 MVP를 차지했던 KIA 선발투수 윤석민의 경우, 자격을 얻었지만 KIA 구단이 해외 진출을 승낙하지 않아 팀에 잔류했다.
포스팅시스템은 2001년 7월에 개정된 한·미 선수계약협정에 의해 만들어졌다. 국내 프로 선수가 7시즌 이상 한국에서 뛴 경우 구단의 동의하에 포스팅시스템을 통한 외국 구단과 계약협상이 가능해진다. 간단히 말해 포스팅시스템은 외국팀 간의 공개입찰제도로 최고액을 제시한 구단이 선수와 독점 계약협상에 임한다. 일본의 경우 올 시즌 텍사스에 입단한 다르빗슈 유를 비롯해 마쓰자카 다이스케(보스턴) 등이 거액의 포스팅 금액을 친정팀에 넘기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프로야구에서 뛰었던 한국 선수들은 포스팅시스템으로 해외진출이 이뤄진 경우가 거의 없었다. 2002년 2월 당시 두산 소속이었던 진필중은 아무 곳에서도 입찰액을 제시하지 않았고 이후 당해 12월 제시받은 포스팅 금액이 2만5000달러에 그쳤다. 삼성에서 뛰었던 임창용 역시 포스팀 금액이 65만 달러 밖에 되지 않았다. 2009년 1월 롯데 최향남은 세인트루이스로부터 포스팅 금액 101달러를 제시받고 계약했다. 일본 마쓰자카와 다르빗슈의 포스팅 금액이 각각 5111만 달러, 5170만 달러인 것을 돌아보면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다.
또한 포스팅 금액을 많이 받더라도 한국 프로야구 실정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부분의 구단이 구단 자체 수익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닌 기업 지원금으로 돌아간다. 즉 포스팅 금액은 자존심 문제일 뿐, 자팀 선수의 해외진출로 구단에 막대한 이익을 남긴다는 관점은 생기기 힘들다. 각 기업의 오너와 구단의 사장·단장에게 있어 매 시즌의 순위가 가장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수익은 한 참 다음 문제다. 그리고 아무리 류현진·오승환이라고 하더라도 마쓰자카와 다르빗슈 만큼의 포스팅 금액을 제시받기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대부분 팀들이 투수자원이 풍족하지 않은 상황이라 절대적 에이스, 혹은 철벽 마무리투수의 공백은 메우기 힘들다. 한화에서 류현진이 빠질 경우, 류현진을 대신할 에이스투수를 찾기 힘들고 삼성도 오승환이 떠난다면 오승환 만한 마무리 투수를 새로 발굴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선수단을 대표하고 선수단 구상에 있어 가장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감독 입장에서 주요선수가 팀을 떠나는 것을 허락하기란 어렵다. 감독 자리는 성적이 곧 생명이기에 선수 구성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물론 이례적인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흔히 말하는 대승적 차원에서 류현진과 오승환, 그리고 지난해 해외에 진출하지 못한 윤석민까지도 올 겨울 해외구단과 협상에 임할지도 모른다. 어느 때보다 빅리그 성공 가능성이 높은 선수들이 한 번에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포스팅시스템이 그저 유명무실한 제도가 될지, 아니면 제대로 시행될지, 오는 겨울에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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