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투구수를 무색케 한 혼신의 132구였다.
'대한민국 최고 에이스' 한화 류현진(25)에게 지난 6일 대전 롯데전은 의심의 여지없이 올 시즌 최고의 피칭이었다. 이날 류현진은 8회까지 무려 132개의 공을 뿌리며 6피안타 3볼넷 9탈삼진 무실점으로 역투했다. 투구수 132개는 류현진의 개인 통산 3번째이자 올해 가장 많은 투구수였다. 한계 투구수를 무색케 만드는 '살아있는 공'을 8회까지 뿌렸다.
▲ 8회에도 최고 150km 강속구

2-0 살얼음 리드를 지키고 있던 8회초 2사 1루. 한화 송진우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갔다. 투수 류현진과 포수 신경현 그리고 송진우 코치가 마운드 위에서 긴밀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류현진의 투구수는 121개. 하지만 송 코치는 류현진의 어깨를 두드리며 홀로 마운드를 뒤로했다. 류현진은 이후 11개의 공을 더 던졌다. 조성환에게 안타 하나를 맞았지만 황재균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실점없이 봉쇄했다.
경기 후 류현진이 밝힌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송 코치가 먼저 "어떻게 할래?"라고 의견을 물었고, 류현진은 "어떻게 할까요?"라고 되물었다. 이에 포수 신경현이 "그냥 던져"라고 주장하며 일단락됐다. 송진우 코치는 "현진이 본인도 괜찮다고 했고, 포수 신경현도 볼이 좋다고 했다. 컨디션이 좋고 투구 내용에도 문제없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했다"며 류현진에게 더 맡긴 이유를 설명했다. 류현진은 8회에도 최고 150km 강속구를 던졌다.
▲ 한계 투구수에 갇힌 정신력
어느 순간부터 프로야구에는 '한계 투구수'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했다. 보통 투구수 100개가 기준이 된다. 베테랑 투수 박찬호의 경우에는 한계 투구수 80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투수 분업화와 함께 불펜과 마무리 보직이 강화됐고, 선발투수들의 역할 크기가 축소됐다. 당연히 한계 투구수와 투구 이닝도 줄어들었다. 하나의 야구 흐름이었지만 과거보다 선발투수들의 정신력이 나약해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KIA 선동렬 감독은 "과거에는 투수 한 명이 다 던졌지만 지금은 투수들의 보직이 구분되어 그런지 몸사리는 경향이 있다"며 "예를 들어 한계 투구수를 100개가 아닌 150개를 목표로 몸 만들면 9회까지도 던질 수 있다. 선발투수는 중간·마무리투수가 있기 때문에 5~6회까지만 책임지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전문성은 있지만 체력과 정신력은 떨어졌다. 5~6이닝만 던지고 나면 마치 자기 할 일은 다 했다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 류현진이 보여준 에이스 위엄
하지만 류현진은 확실히 달랐다. 그는 "컨디션이 좋았고, 힘들지 않았다. 8회까지 던져도 무리없었다"고 자신했다. 송진우 코치는 "우리나라는 투수들의 투구수에 예민하다. 하지만 투구수가 아니라 공의 상태를 보는 것이 우선"이라며 "현진이는 에이스 아닌가. 에이스이니까 경기를 책임질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류현진은 '대한민국 최고 에이스'답게 8회 위기 상황을 직접 해결하고, 마운드를 내려오는 책임감을 과시했다.
퀄리티 스타트에서도 그의 위엄이 드러난다. 류현진은 올해 23경기 중 18경기를 퀄리티 스타트했다. 브랜든 나이트(넥센·22경기)에 이어 전체 2위. 하지만 기준을 7이닝 이상 2자책점 이하로 높이면 18경기 중 무려 14경기에 달한다. 리그에서 가장 많은 수치. 가장 길게 던지면서 최소 실점으로 막을 수 있는 투수. 그게 바로 류현진이다. 한계 투구수를 무색케 한 류현진의 132구 투혼은 나머지 선발투수들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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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