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이 사극 '광해, 왕이된 남자'로 돌아온다. 그것도 왕과 광대를 오가는 1인 2역이다. 생애 첫 사극이고, 생애 처음 본격적인 코믹 연기에 도전했다. 그 결과는?
"역시 이병헌!!"이란 호평이 지배적이다.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철저히 조사하고 분석해 그 안으로 흠뻑 스며드는 그의 치밀하고 타고난 배우 습성은 늘 열연을 부른다. 이병헌은 '광해'에서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고, 거꾸로 둘이 아니라 하나였다. 영화 '광해'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소재와 줄거리를 이병헌의 열연에 힘입은 해학과 웃음, 그리고 짙은 페이소스로 풀어내며, 2시간30여분 긴 런닝타임 내내 관객에게 웃음과 감동을 안기는 수작으로 태어났다.
폭염은 간데없고 어느새 맑고 높은 하늘 아래 청명한 기운이 감도는 9월 어느날, 삼청동 한 카페에서 배우 이병헌을 만났다. 그는 올 여름 경사와 악운을 동시에 맛보고 있다. 어느덧 중년의 나이, 천생배필이 분명한 여자친구와의 열애를 발표하자마자 뻔뻔하고 악의적인 딴죽걸기와 악성루머들로 마음고생을 했을 터다.

그럼에도 편안하고 밝은 얼굴로 기자를 맞이했다. 왜? 이병헌의 천직은 배우이고 그는 배우로서 해야될 영화 홍보 인터뷰와 방송 출연들을 소화하느라 며칠째 밤낮없이 뛰는 중이니 잡념을 떨쳐야 했다. 이것이 바로 배우 이병헌의 의지다.
ㅡ 광대 하선이 한순간에 폭군 광해로 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1인2역 연기가 힘들지 않았나
처음엔 왜 하선을 광대로 설정했을까 의아했다. 광대이다보니 첫 등장에서 춤사위도 벌이고 소리도 하고 그래야 되니까. 단지 한 신이지만 광대 연기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될 지 생각하니 막막했다. 당장 광해와 하선, 두 캐릭터를 놓고 어떤 감정 라인을 가져가야되며 어떻게 연기해야될 지를 고민해야 할 시간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고, 결과적으로 천민 하선 아닌 광대 하선이 관객들에게 공감을 줄수 있는 신분이었다. 하선이 광해를 처음 만나 "따라해보거라" 어명 한 마디에 그대로 흉내를 낼수있는 게 납득이 가지않나? 이런 부분을 자연스럽게 풀어줄 수 있는 고리가 과연 광대더라.
ㅡ 닮은 사람이라지만 세상에 일란성 쌍둥이도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다. 그런데 1인 2역은 결국 같은 인물이 연기하는 것 아닌가
1인2역이라, 딜레마였다. 어차피 같은 사람이 두 캐릭터를 연기하는 건데 과연 얼마나 달라보일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특히 '광해'에서는 하선과 광해의 분장을 서로 크게 바꿀수 있거나 의상을 다르게 할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똑같이 왕의 옷을 입어야하고 수염도 똑같고. 결국 같으면서 다른 사람을 만들수 있는 건 연기밖에 없었다.
온전히 연기로 광해와 하선의 다른 점을 부각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냈고 대사와 눈빛이 중요했다. 이렇듯 배우 이병헌을 다른 두 캐릭터로 다르게 보여주기 힘든 제한지점이 있어서 힘들긴 했다. 해결책은 광해와 하선, 각자의 기분과 성격에서 찾았다. 내가 누구로 사는 거냐는 설정을 반복해 되새겼다. 하선은 손님들이 집어던져주는 돈 집어먹고 사는 놈이니 항상 눈치 빠르고 상황 판단 잘하고 익살 떨고, 그런 형태 광대의 삶을 머릿속에 그리고난 뒤에야 심정적으로는 하선과 광해가 확실히 구분이 갔다.
그리고 광해군에 대해 이미지는 역사책이나 여러 관련자료를 통해서 그 인물의 기질 등을 열심히 공부해 대입했다. 광해군에 대한 평가도 상반되게 갈려있다. 폭군과 선각자로. 이런 이중적인 우리의 인식을 내가 둘로 나눠서 연기를 해보면 어떨까. 아예 이영화에서는 폭군 쪽으로 광해를 몰아넣고 선각자이고 성군으로서의 역할은 하선쪽으로 돌려서 해보면 어떨까 했다..

ㅡ '광해' 다음은 또 할리우드에서 블록버스터를 찍는다. 몸을 풀었다 다시 만드는 과정이 정말 고통스럽지 않나
한번 만들었던 몸은 (다시 몸을 만드는게)그렇게 힘들지 않다. 근육이 기억을 한다고 하더라. 근데 이제는 나이 때문에 힘들다. 나이 때문에(웃음). 일정 나이를 넘어서면 의학적으로 근육이 생기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하더라. '광해'가 20일 개봉인데 10일부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레드2' 촬영장에 합류해야된다. 한 20일 전에 운동을 처음으로 시작는했는데 며칠전부터 '광해' 홍보를 밤낮없이 돌면서 몸이 다시 망가지기 시작했다.
ㅡ '지 아이 조' 때 실근육까지 섬세하게 드러난 몸짱 이병헌은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운동을 원래 좋아하나
캐릭터가 근육질 몸을 꼭 필요로 하는 경우에만 최선을 다해 운동한다. 사실 아주 힘들고 고생스러운 부분이다. 운동만 하는 게 아니고 식이요법도 병행해야되니 먹는 것도 엉망이다. 내가 운동선수도 아닌데 프로처럼 운동에만 몰두할지는 않는다. 그런데 '레드2'에서는 내가 첫 등장하는 장면에서 바디체크(몸수색)를 받는다. 무기가 있나 없나 확인당하는 건데 정말 홀딱 벗고 찍는다.
그것까지는 좋은데 이거 참, 시나리오에 이 장면은 딱 한줄 '완벽한 몸매'라는 설명만 달려있는 거다. 이 걸 보고는 내가 이 한 줄때문에 3개월 고생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할리우드 관계자들이 '지 아이 조'에서 내 몸매 보고 '쟤는 원래 근육질 몸짱이구나'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시나리오 보고 미치는 줄 알았다(웃음). '레드' 1편은 워낙 미국적인 코미디라 한국에서는 잘 안됐다더라. '레드2'는 시나리오를 무척 재밌게 읽었다. 전편보다 더 잘 나올 것같다.
ㅡ영화 흥행에 대한 부담은 없나
처음에는 영화 흥행에 가급적 신경을 안쓸려고 애썼다. 아니면 내가 어렸을 때 출연영화 4개가 연달아 안됐는데 괴로워서 어떻게 살았겠나. 그 때는 그냥 내가 열심히 연기하는게 너무 신났다. 그런데 갈수록 숫자를 중요시하는 사회가 되다보니까, 특히 영화는 흥행 성적 등 각종 숫자에 굉장히 민감해기 십상이다. 나도 어느정도 세상과 타협을 했는지 이제는 그 부분에 신경을 쓰게 되더라.
하지만 역시 사람들이 오래 기억해주는 영화가 좋다. '달콤한 인생'과 '번지점프를 하다'는 아직도 해외에서 추천해주는 비디오 목록에 들어가 있고. 번사모는 개봉 1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계속 팬들이 모인다. 물론 상업적인 흥행을 목표로한 영화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이번 '광해'는 개인적으로 기대가 된다. 상업적인 면과 작품적인 면을 고루 갖췄다.

ㅡ 본격적인 코미디 연기는 '광해'가 처음인 것같다
원래 성격은 유쾌하고 잘 웃는다. 데뷔 무렵 '내일은 사랑'이라는 캠퍼스 드라마에서 조금 웃기는 연기를 했달까. 하지만 그 때는 연기가 아니고 있는 모습과 성격 그대로를 보여줬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최근에는 '그해여름'에서 조금 웃기는 장면이 있었고. 음, 생각해보니 이렇게 제대로 된 코미디는 해본적이 없다. 사실 '아이리스'나 '달콤한 인생' '놈놈놈', '악마를 보았다'에서 맡은 역할들은 판타지적인 캐릭터에 가깝지 그게 어떻게 진짜 사람의 모습일수 있겠는가. 그런데 사람들은 영화 속 그 모습과 잔상, 그리고 캐릭터를 배우와 이입해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ㅡ 배우로서 연기에만 전념하는 쪽이다. 그런데도 잦은 악성 루머로 고생하다보니 상처가 많겠다
고민하고 있다. 선배들이 나에게 가르친 '배우는 자신을 일반에게 너무 많이 드러내보여서는 안된다' 교훈을 명심한다. 내가 아는 배우의 룰이고 지금까지 지켜왔다. 그런데 이 시대는 대중과 조금 더 가까이 하고, 조금 더 많은 걸 보여주면서 친숙한 옆집 형같은 배우상을 더 바라는 것같다. 이제는 어떤 게 맞는지 헷갈린다. 불과 수년전만에도 내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고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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