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 연봉을 받는다는 것은 그 선수의 기량이 검증됐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부상으로 그 실력을 펼칠 무대가 사라진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올 시즌 연봉 1억 원 이상을 받는 프로야구 선수는 총 112명이다. 그 중에서도 ‘고액 연봉자’라고 할 수 있는 연봉 3억 원 이상은 '15억 원 신화'를 쓴 김태균(한화)를 비롯해 총 32명에 이른다. 많은 연봉을 약속한 만큼 팀의 기대치도 컸던 선수들이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서도 희비는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잘하는 선수들도 있지만 부진한 선수들도 만만치 않게 많다.
‘돈값’을 제대로 못하는 선수들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부상이라는 이유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가진 능력을 보여줄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김동주(두산) 박경완(SK) 이범호(KIA) 정재훈(두산) 등이 부상이라는 악령에 시달린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팀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에 각 팀들의 속도 새까맣고 타들어가고 있다.

김동주는 올 시즌 66경기 출전에 그쳤다. 지난 6월 21일 잠실 넥센전에서 베이스러닝 도중 왼쪽 대퇴내전근이 부분 파열돼 3주간 재활했다. 그러나 그 후 타격 컨디션을 찾지 못했고 결국 8월 4일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타율 2할9푼1리 2홈런 27타점의 초라한 성적표다. 특히 홈런은 데뷔 이후 최소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최근 타선의 불발로 타자 하나가 귀한 두산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이범호 박경완 정재훈에 비하면 김동주의 사정은 그나마 낫다. 이범호는 올 시즌 42경기밖에 소화하지 못했다. 햄스트링 부상 탓이다. 스프링캠프 때까지는 좋은 컨디션을 과시했으나 정작 시즌에 들어와서 몸에 탈이 났다. 시즌 내 복귀도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선동렬 KIA 감독은 일찌감치 “올해는 힘들 것 같다”며 전력구상에서 이범호의 이름을 지웠다. 이범호의 이탈 속에 KIA는 팀 홈런 최하위(45개)로 처졌다.
SK 부동의 안방마님이었던 박경완은 수많은 수술에 고전하고 있다. 2009년과 2010년에 걸쳐 양쪽 아킬레스건에 모두 손을 댄 박경완은 지난해 7월 오른 발목 수술을 받고 2011년을 접었다. 재활에 매진하다 올 시즌 1군에 복귀하기도 했으나 8경기에만 나선 뒤 다시 모습을 감췄다. 정재훈도 상황은 비슷하다. 두산 계투진에서 종횡무진 분투하다 지난해 오른 어깨 회전근 부상을 입었던 정재훈은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여전히 재활 중이다. 올 시즌 복귀 여부는 불투명하고 다음 시즌에 초점을 맞추고 재활에 여념이 없다.
시즌 초반 넥센의 돌풍을 진두지휘하던 이택근(넥센)도 부상에 울었다. 이택근은 8월 24일 목동 SK전에서 수비 도중 무릎을 다쳐 전열에서 이탈했다. 조만간 복귀할 수 있을 전망이지만 그 사이 넥센은 힘이 빠지며 순위경쟁에서 밀렸다. 그 외에도 정대현(롯데)은 부상으로 후반기에 지각 데뷔전을 치렀고 김병현(넥센) 역시 몸을 만드는 데 애를 먹으며 기대만큼의 활약은 펼치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3억 이상 고액연봉자가 6명(이승엽 진갑용 배영수 오승환 박한이 최형우)이나 되는 삼성은 모두 제 역할을 하며 선두를 달리고 있다. 되는 집과 안 되는 집의 차이는 여기서도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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