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독야청청…2012 좌타 거포 침체기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2.09.10 09: 17

돌아온 라이언 킹이 없었더라면 20홈런 좌타자가 전무한 시대가 될 수도 있었다. 어느덧 끝을 향해 달려가는 2012시즌 페넌트레이스에서 8개 구단 좌타자들 중 이승엽(36, 삼성 라이온즈)을 제외하고는 시즌 20홈런은 커녕 시즌 15홈런도 넘기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8개 구단이 평균 20경기 남짓의 일정을 남겨두고 있는 가운데 시즌 20홈런 고지를 밟은 홈런 5걸 중 좌타자는 이승엽 뿐이다. 일본에서의 9시즌을 마치고 올해 데뷔팀 삼성으로 복귀한 이승엽은 3할6리 20홈런 76타점(9일 현재)을 기록하며 ‘국민 타자’라는 수식어를 국내 팬들에게 다시 한 번 과시하고 있다.
문제는 이승엽 외 좌타 거포들의 위력이 예년만 못하다는 점. 지난해 홈런-타점 타이틀을 석권했던(30홈런-118타점) 최형우(29, 삼성)는 올 시즌 2할6푼1리 14홈런 68타점을 기록 중이다. 중후반 들어 제 위력을 찾았으나 시즌 초반 극심한 슬럼프로 인해 자기 타격을 못했던 최형우다.

최형우 다음으로 좌타자로서 10홈런 이상을 친 선수도 박정권(SK)과 오지환(LG) 단 두 명이다. 최형우처럼 시즌 초반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던 박정권은 2할5푼 12홈런 52타점을 기록 중이며 최근 들어 톱타자로 출장 기회를 얻고 있는 오지환은 2할4푼7리 12홈런 48타점의 성적을 남기고 있다. 그 뒤를 박종윤(롯데)과 박용택(LG, 이상 9홈런), 장성호(한화, 8홈런)에 이어 최희섭(KIA), 김현수(두산), 장기영(넥센, 이상 7홈런) 등이 잇고 있다. 페이스가 올라오고 있는 최형우, 박정권의 20홈런 가능성도 남아있으나 결국에는 몰아쳐야 한다.
외국인 선수 제도 도입 이래 처음으로 타자 없이 투수로만 팀 당 두 개의 슬롯을 채운 올 시즌 우타 거포 편향 현상이 심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기대를 모았던 타자들이 슬럼프에 빠지거나 제 타격에 전념하지 못하는 등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지난해 홈런-타점 타이틀홀더 최형우와 올해부터 주장으로 선임된 박정권은 심리적인 무게를 어깨에 짊어진 채 타석에 들어섰고 결국 이것이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치고 말았다.
최희섭의 경우는 올해 초부터 트레이드 루머에 휩싸이는 등 선동렬 신임 감독 체제에 규합되지 않는 인상을 남겼고 현재에도 줄부상이 이어지는 등 악재 속에 사실상 전력에서 배제되고 말았다. 팀의 주전 유격수를 맡고 있는 오지환은 거포라기보다 중거리 타자의 이미지이며 박종윤은 올해가 첫 풀타임 시즌이다. 성장 가능성에서 기대를 모았던 김현수는 스스로 선택한 타격폼 변형 과정 속에 여전히 과도기를 거치고 있으며 장기영은 거포가 아니다. 장성호, 박용택도 거포라기보다는 중장거리형 타자로 분류하는 것이 옳다.
1999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부터 10년 간 대표팀의 중심 타선을 지켰던 이승엽을 제외한 왼손 거포들의 침체 현상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메이저리거 추신수(클리블랜드)가 가세한다고 해도 당장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중심 타선의 우향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과도 이 고민이 맞닿을 가능성도 크다.
특히 유망주들의 병역 특례 혜택과 직결된 아시안게임임을 감안하면 현재 병역 미필로 왼손 최다 홈런 타자는 12홈런을 때려낸 오지환 뿐이다. 그나마도 오지환은 김상수(삼성), 김선빈(KIA) 등 같은 병역 미필 유망주들과 함께 유격수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입장. 수비력 면에서는 김상수와 김선빈이 아직은 오지환보다 앞서 있는 것이 사실이다. 9개 구단 전체로 봤을 때 아직 기량의 싹을 틔우지 못한 20대 초중반의 좌타자 유망주들을 둘러보면 왼손 순혈 파워히터가 거의 전무, 시간이 갈수록 우타 거포 편향 현상이 심각해 질 가능성도 크다.
한 아마추어 야구 관계자는 “90년대 중반부터 발 빠른 타자들에게 우투좌타로 변신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것이 대세가 되면서 발 빠르기가 어정쩡한 선수들까지 우투좌타로 변모, 왼손 타자 머릿수만 많아지는 현상이 많아졌다. 오랫동안 만연한 성적 지상주의까지 겹치며 승패를 우선시했다. 그동안 아마추어부터 왼손 거포를 전략적으로 키운 전례가 어디 있는지 찾아보라”라며 혀를 찼다. 좌타자의 양만 많아지다보니 반대로 파워 배팅을 할 수 있던 유망주까지 발 빠르기를 높이는 데 주력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지적이다.
그저 올해만의 일시적인 현상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승엽은 이미 우리나이 서른일곱의 베테랑 타자. 10년 후에도 이승엽이 한국을 대표하는 좌타 거포로 활약할 것이라고 보장하는 이는 거의 없다. 추신수도 우리 나이 서른 하나로 지금이 절정기를 달릴 시기다. 기존 좌타자들의 더 나은 분발은 물론 미래를 생각했을 때 유망주 육성 체계에서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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