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의(27, LG)는 지난 8일부터 있었던 KIA와의 3연전에서 최고의 활약을 선보이며 팀의 싹쓸이를 주도했다. 8일 끝내기 희생플라이를 친 데 이어 9일과 10일에는 도합 9타수 5안타의 맹타를 휘둘러 1루 관중석의 LG 팬들을 환호하게 했다.
이런 김용의에게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그는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훈련소 동기 중 큰 키에 늘씬한 체구가 단연 돋보인 김용의는 의장대로 차출됐다. 2년 가까이 의장대 기수로 배트 대신 깃발을 들었다. 야구선수로서는 최악의 환경이었다. 그러나 제대 후 마무리캠프에 합류한 김용의는 악바리 정신으로 김기태 LG 감독의 마음을 흔들었다. 결국 야구를 계속할 수 있게 됐고 10일 현재 올 시즌 69경기에 출장했다.
대한민국의 신체 건강한 남성들에게는 모두 국방의 의무가 있다. 야구선수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 그러나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야구선수가 현역으로 군 복무를 한다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야구와 완전히 멀어지기 때문이다. 구타 문제로 병영에서 야구 방망이를 찾아보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이런 여건에서는 체계적인 훈련은 고사하고 감조차 잃어버리기 일쑤다.

구단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현역 입대는 상무나 경찰청 테스트에 합격하지 못한 선수들이 선택하는 최후의 방법이다. 그러다보니 구단의 시선에서 멀어지고 기대치도 사라진다. 제대하더라도 곧바로 방출 통보를 받는 선수들이 많다. 하지만 상황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최근에는 김용의와 같은 사례들이 많은 까닭이다.
김용의의 팀 동료인 윤요섭(30, LG)은 귀신 잡는 해병대 출신이다. 프로지명을 받지 못한 윤요섭은 해병대에서 악을 키웠다. 제대 후 신고 선수로 SK에 입단했고 트레이드를 통해 LG 유니폼을 입었다. 올 시즌 63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2푼1리를 기록하는 등 LG의 안방에서 조금씩 입지를 넓히고 있다. 아직 포수로서의 경험은 조금 부족하지만 해병대 특유의 근성 하나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올 시즌 가장 유력한 신인왕 후보로 불리는 서건창(23, 넥센)도 육군 현역병 출신이다. 경찰청 테스트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후 현역으로 입대했다. 군에 다녀온 후 넥센의 신고 선수 테스트에 합격해 프로 재입성의 꿈을 이뤘다. 108경기에 나서 타율 2할7푼7리 28도루를 기록, 넥센을 넘어 전체 프로야구판에서 '올 시즌의 발견'으로 불린다.
SK에서 알토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임훈(27)도 육군에서 훈련 조교로 군 복무를 마쳤다. 역시 정신력과 성실함은 누구나 인정하는 투지의 아이콘이다. SK의 지옥 훈련도 묵묵히 수행해내며 코칭스태프의 신임을 얻었다. 그 과정에서 기량이 가장 많이 성장한 선수로도 손꼽힌다.
시대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베테랑 투혼을 과시하고 있는 최향남(39, KIA)과 롯데 마무리 역사를 새로 쓴 김사율(32) 역시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두 선수는 포병부대에서 근무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1991년 입대한 최향남은 현재보다 9개월이 더 긴 30개월을 복무했다.
스스로 “평범한 군 생활을 했다”라고 한 서건창은 “동기들이나 후배들이 프로에서 뛰는 것을 보니 많이 부러웠다. 하지만 제대로 된 운동은 할 수 없었다. 기껏해야 웨이트 트레이닝이었다”고 떠올렸다. 이처럼 현역으로 입대한 선수들은 스윙 대신 삽질을 해야 했고 야구공 대신 돌맹이를 던지며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들을 이끈 것은 절박함이었다. 서건창은 “야구가 아니면 무엇을 할까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다른 선수들의 대답도 비슷하다. 남들보다 더 많은 고민을 하며 키운 절박함은 제대 후 미친 듯이 야구에 달려드는 원동력이 됐다. 힘든 시기를 거치며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졌고 무엇보다 야구를 대하는 자세가 진지하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올 시즌을 끝으로도 많은 선수들이 군 입대를 계획하고 있다. 이제는 구단에서도 선수들의 군 문제를 전략적으로 관리한다. 이런 상황에서 현역 제대 선수들의 도전은 후배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환경에 관계없이 꿈은 누구나 꿀 수 있어 공평하다는 것을 이 예비역들이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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