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은지 “표준어? 낯 간지러워 못한다” [인터뷰]
OSEN 임영진 기자
발행 2012.09.11 08: 57

생각보다 어렸고 기대보다 성숙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연기에 도전하면서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이런 행운아가 어디에 있을까. 은지는 지난해 에이핑크로 데뷔, 걸그룹 홍수 속에서 이름 알리기에 성공했고 올해 tvN 주간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하 응답하라)을 통해 일명 ‘연기 천재’로 거듭났다. 그야말로 탄탄대로다.
‘응답하라’에서 은지는 꽃다운 고등학생과 33세 막내 작가를 오가고 있다. H.O.T라는 존재에 대해 뜨거운 애정을 가슴에 품어 봤다는 동질감을 가지고 마주했건만, “이제 스무살”이라는 소개는 정말 낯설게 다가왔다. 그래도 “다들 27살까지 보시더라고요”라면서 재미있다는 듯 웃어 보이는 은지의 모습이 나쁘지 않았고 대화를 이어가면서 그 마음은 호감으로 돌아섰다. 스무살의 은지든 서른셋의 성시원이든 인간적인 매력은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 스무살의 은지 쪽으로 마음이 좀 더 기울었는지도 모르겠다.

은지에게 성시원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잘 몰랐던 걸그룹 멤버가 요즘 제일 좋다”는 언니 팬이 등장했고 “은지가 관심이 간다”는 삼촌 팬도 늘었다. 10대들의 지지를 받던 은지가 전국구로 인기를 확장시킨 원동력이 됐다. “시원이 덕분에 은지를 많이 볼 수 있다”는 가족들의 든든한 응원은 홀로 상경해 꿈을 위해 분투 중인 청춘에게 크나큰 위로가 됐다.
지난주 ‘응답하라’ 촬영이 종료됐다. 이제 은지는 ‘안승부인’ 성시원도 ‘윤윤제의 사랑’ 성시원도 아니다. 그래서 아직 힘이 든다. “난 아직 시원인 것 같은데 윤제도 태웅이도 곁에 없”기 때문이다. “차차 나아지겠죠?” 대답이 정해진 질문을 건네는 은지의 모습에 괜히 서운했다. 그건 ‘응답하라’를 보는 사람들만 이해하는 아쉬움일 것이다.
-촬영을 마친 기분이 어떤가.
보통 끝나면 시원섭섭하다고 하는데 저는 섭섭하기만 했어요. 연인과 헤어진 느낌하고는 다른 공허함 같은 거랄까요. 시원이를 받아주던 윤제도 없고 태웅이도 없다는 사실이 낯설어요. 이제 시원이한테서 빠져 나와야 하는데 문득 문득 시원이의 감성이 돼요.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제일 좋았던 장면은 14회에 나왔던 부분인데요. 윤제하고 6년 만에 재회를 했을 때 시원이가 이런 말을 해요. ‘친구? 지랄하네.’ 이건 윤제가 시원이에 대한 마음을 고백하면서 했던 말이거든요. 그리고 윤제가 도망치듯 자취를 감췄단 말이죠. 시원이가 하는 통쾌한 복수였고 지난 6년 동안의 시간을 연결하는 접점이 됐다고 생각해요. 많은 의미가 있던 대사였고 장면이었죠. 개인적으로는 모든 에피소드를 통틀어서 속이 제일 시원했어요.(웃음)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아쉬웠던 점이라면 처음부터 시원이에게 온전히 빠지지 못했다는 거예요. 연기를 어떻게 해야할까를 신경 쓰느라 걱정이 많았거든요. 처음이다 보니까 연기력에 대한 걱정이 컸고 주춤했던 게 있었어요. 원래 제가 무언가를 할 때는 푹 빠지는 편이거든요. 한다고는 했는데 초반에는 에이핑크 정은지의 모습을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촬영이 진행될수록 시원이에 빠져들었지만요.(웃음)
 
 
-첫 연기 도전이었는데 어땠나.
연기 첫 도전이었고 원래 연기를 하던 사람이 아니었잖아요. 그래서 성동일 선생님이나 이일화 선생님, (신)소율 언니, (이)시언 오빠도 그렇고 약간 거리감이 있을 줄 알았어요. 지금에 와서는 제가 그런 생각을 했던 게 나빴던 거 같아요. 거리를 둘 거 같았던 그 분들이 어찌나 잘 해주셨는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해요.
-제2의 수지, 연기 천재 같은 극찬이 이어지고 있다.
칭찬 받으면 몸 둘 바를 몰라하는 스타일이에요. 저에 대해 좋은 이야기 해주시는 분들 뵈면 감사하기도 하고 기분은 엄청 좋은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33세로 나왔지만 본인은 이제 20세가 됐다. 소품이라든가 상황이 낯설지는 않았나.
저도 PCS 써본 적 있거든요. 아버지가 삐삐를 오래 쓰셔가지고요. 삐삐도 알아요. ‘응답하라’에서처럼 메시지를 주고 받은 적은 없지만요. 드라마에 나왔던 소품들이 낯설지만은 않아요. 제가 문화의 중심에 있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영향을 받았고 관심도 많았거든요. 재미있는 건 저를 시원이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서요. 33세까지는 아니더라도 27세까지 보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시원이를 연기할 때 어려운 점은 없었나.
어려웠죠. 그런데 실제 저하고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웃음) 친구들하고 허물없이 지내는 모습이나 말투 같은 것들이요. 친구들이 학교 다닐 때 모습 보는 것 같아서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부산에 있을 때는 남자 같았어요. 친구들 사이에서는 애늙은이였고. 그래서 걸그룹 한다고 했을 때 친구들이 거짓말하지 말라고 그랬었던 게 기억나요.
-아직도 사투리를 쓰고 있다.
표준어 쓸 수 있는데요. 낯 간지러워서 못 하겠어요. 제가 안 웃고 있으면 무섭다는 말을 듣는 편이거든요. 거기에다가 센 사투리까지 쓰니까 저희 멤버들이 처음에는 오해하기도 했대요. 지금 제가 쓰는 건 표투리(표준어+사투리)에요. 고치려고 하는 편인데요. 툭툭 사투리가 나와요.
‘다 됐고! 시원이의 남편이 윤제냐, 태웅이냐’가 ‘응답하라’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최고의 관심사다. 등장인물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의미를 부여해 여러 설들을 쏟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은지는 이 부분에 대해 끝까지 함구했다. 시청자들이 누릴 빅 재미를 빼앗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선택하자면 윤제에요. 시원이에게만 특별한 윤제가 저와 더 맞아요. 하지만 시원이는 누굴 선택할까요? 자체 스포일러는 안 된다고 감독님께서 여러 번 당부하셨기 때문에 저는 말을 아끼겠습니다. 하하. ‘응답하라’ 끝까지 사랑해주세요.”
plokm02@osen.co.kr
에이큐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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