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연기가 베니스를 홀렸다. 비록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심사위원이 직접 그녀에게 다가와 "당신이 여우주연상의 주인공이었다"며 안타까워했을 정도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 배우 조민수는 그렇게 베니스에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사실 조민수의 연기력은 한 차례도 의심받은 적이 없었다. 수많은 작품들을 해오면서 조민수는 오랜시간 연기 인생 외길을 걸어왔다. 특히나 최근 후배 여배우들에게 "연기자는 주름도 이야기거리"라고 말할 정도로 연기에 대한 소신도 확고하다.
이처럼 오랜시간 쌓아온 그녀의 관록이 김기덕 감독을 만나며 그 진가를 발휘했다. 인간의 감정을 잘 표현해내는 김기덕 감독답게 영화 '피에타' 속 조민수는 그동안 찾아볼 수 없었던 감정의 폭발을 선보이며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그 자신도 김기덕 감독을 만난 것을 행운이라 여겼다. 자기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조민수의 색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좋았던지 주변 지인 연기자들에게도 김기덕 감독과의 작업을 추천했을 정도였다.
- 작품 선택 전 고민은 없었나.
▲ 작품을 보기 전에 감독님에 대해 고민을 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김기덕 감독님의 작품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나면 뭔가 어둡고 잠을 잘 못들고 그래서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다. 몇몇 작품을 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생각했던 감독님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같이 작업하면 즐거울 수 있을까 궁금은 했다. 어떤 분인데 이런 작품을 만들었을까도 궁금했다. 그래서 일단 만났는데 어둡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보여주는 미소가 사람냄새를 나게 하더라. 그리고 이후에 대본을 봤다. 물론 감독님과 나와 부딪히는 부분이 있었다. 연기자가 대본을 이해하지 못하고 카메라 앵글안에서 놀지 못하면 표현이 안되니까 감독님과 서로 얘기하면서 진행해갔다. 그랬더니 충분히 소화가 되더라.
- 어떠한 설정으로 여자 캐릭터 연기에 임하셨는지 궁금하다.
▲ 나는 연기를 할 때 캐릭터 설정을 별로 하지 않는 편이다. 다만 그 여자를 계속 생각한다. 그 여자의 보여지지 않은 부분들을 생각해서 내가 나머지 글을 쓴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쓴 캐릭터는 좀 더 다르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캐릭터 설명은 글 안에 나와있지만 그걸 어떻게 잡고 가냐는 배우의 몫이다.
- 파격적인 캐릭터인데 연기한 소감은 어떤가.
▲ 재밌었다. 나는 인간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연기자들은 감정을 많이 개발하는 편이어서 속에 숨어있는 감정들을 노출시키는 것이 익숙할 뿐이다. 분명 내 안에 악도 있을 것이고 선도 있을 것이다. 연기를 할 때는 그러한 숨어있는 감정들을 확대해서 내보내는 것이지 없는 것을 내보내는건 아닌것 같다. 어떻게 끄집어내서 하느냐, 그걸 해보지 않아서 못할 뿐이지 사람에겐 악도 있고 선도 있다.
-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이 있다면.
▲ 제일 행복할때는 내가 연기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날때다. 모니터 속에서 내가 아닌 다른 나를 봤을때 정말 좋았다.
- 이정진과의 호흡은 어땠나.

▲ 우리 영화는 장면 순서대로 촬영이 진행되서 첫 만났을때의 긴장감이 필요했는데 충분히 그 긴장감을 사용한 것 같다. 점점 극이 진행될수록 감정이 고조되고 호흡이 붙고 익숙해지는 시간들이 순서대로 가니까 거기에 장점이 있었다. 정진씨도 연기를 하다가 자기 자신도 연기를 어떻게 했는지 모르는 느낌들을 받았을 것이다. 그 친구가 가지고 있던 다른 것들이 이번 영화를 통해 많이 보여졌다.
- 촬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 너무 추웠고 너무 열악했다. 그런데 너무 행복했다. 너무 재밌더라. 몸이 힘들어도 이렇게 연기의 재미를 알 수 있는 역할을 맡으니까 신이 나는구나를 느꼈다. 촬영장이 신났다. 잠을 못자도 즐겁고 행복했다.
- 앞서도 언급했듯이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에게 이번 '피에타'의 매력을 설명한다면.
▲ 영화를 가볍고 즐겁게 보면 상쾌하지만 나중에 영화에 대해 얘기하라면 할 게 없다. 김기덕 감독님의 작품들 중 한두개는 가슴을 파고 들더라. 이번 '피에타'를 찍을 때도 장면마다 의미가 있었다. 소품 하나하나에도 의미가 있었다. 물론 되게 찝찝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면 먹먹할거다. 마무리가 찝찝하지만 여타의 작품들보다 먹먹했다. 그것을 따라가면 좋지 않을까한다.
- 아무래도 나이가 한살한살 먹어가면서 여배우는 역할에 한계가 오기 마련이다. 여배우에게 나이란 어떤 의미일까.
▲ 여배우들이 일찍 사장되는건 사실인것 같다. 동물도 수컷은 나이가 들면 멋이 있는데 암컷은 나이가 먹으면 멋있지가 않다. 암컷이 기간이 짧은 건 사실이다. 여자의 주름은 자칫하면 추하게 보이기도 한다. 남자의 주름은 그렇지 않지 않은가. 그런 것들은 속상하다. 그래서 다들 얼굴에 손을 대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나도 문득문득 손을 대야 하나 생각이 들고 그래서 여배우인게 속상할 때도 많다. 여자라는 틀 안에 놓이면 여자는 곱상하고 조신하고 등등의 조건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세상이 여자에게 바라는 기준이 있다. 그런 것들은 안타깝다. 그리고 아깝다. 똑같이 세월을 지나면서 표현할게 많은데 여배우에겐 역할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여자의 냄새들을 자꾸 없애버린다.

- 계속해서 역할, 연기에 대한 도전을 하고 싶은가.
▲ 정체돼 있는건 싫다. 같은 재료로 너무 많이 사용하면 식상할 것같다. 조금 포기해야하는 부분도 생기지만 그렇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 계속 도전할 것이다.
- 김기덕 감독이 다시 러브콜을 보내면 흔쾌히 할 생각인가.
▲ 다들 나에게 감독님한테 러브콜을 하면 어떡할꺼냐고 묻더라. 그래서 나는 캐릭터가 별로면 안할거라고 했다(웃음). 캐릭터가 좋으면 감사히 할 것이다.
- 김기덕 감독에게 푹 빠진 것 같다.
▲ 또 다른 나를 만든거다.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는 주변의 도움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나 혼자 연기에 몰입해야 했다. 덕분에 나를 모으는 법을 배웠다. 요즘 주변 친구들에게 김기덕 감독님과 작업을 꼭 하라고 추천한다. 어느정도 나이가 있고 경력이 있으면 익숙해져있고 매너리즘에 빠지고 기술적으로 연기를 하게 된다. 그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김기덕 감독님은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김기덕 감독님게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다른 데선 돈을 받았지만 감독님 한테는 열정을 받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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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