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전이었다. 김기태 LG 감독은 작정한 듯 섭섭함을 쏟아냈고 이를 전해들은 이만수 SK 감독은 당황하면서도 답답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사태의 시작은 12일 잠실에서 열린 두 팀의 대결이었다. LG는 0-3으로 뒤진 9회 2사 2루에서 SK 마무리 정우람이 올라오자 투수 신동훈을 대타로 쓰는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 사실상 경기 보이콧이었다. 여러 추측이 난무했고 김 감독은 13일 경기 전에 앞서 취재진을 상대로 당시 상황을 해명했다. 요약하면 “SK가 우리를 기만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김 감독이 불만을 토로한 부분은 SK의 투수교체다. 8회 나온 박희수로 계속 갈수도, 정우람을 9회 시작부터 올릴 수도 있었는데 왜 9회 1사에서 이재영을 올렸냐는 것이다. 김 감독은 “내가 볼 땐 우리 선수들을 가지고 놀았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감독은 “팬들을 우롱할 생각은 없었다. 7000여명의 팬들 앞에서 그런 결정을 한 감독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하지만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중요하다. LG와 김기태의 색깔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만큼 팀의 미래를 생각한 결정이었다”라고 설명한 뒤 “팬들에게는 죄송하다”라고 사과했다. 반대로 SK를 상대로는 날을 세웠다. 시종일관 강경했다.

김 감독은 “비판은 얼마든지 받겠다. 책임질 것을 각오하고 한 일”이라고 했지만 이 감독에 대해서는 섭섭함을 드러냈다. 김 감독은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살렸다가 다시 죽이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라고 다소 격한 표현을 썼다. 경기 후 이 감독과 연락을 주고받은 일이 있느냐라는 질문에는 “아직 없었다”라고 말하면서 “(이 감독에게) 죄송할 것 같았으면 하지도 않았다”고 대답했다. 표정은 굳어있었다.
이 감독의 반응도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애써 여유를 찾으려고 했지만 중간 중간 말을 잇지 못했다. 이 감독은 “야구는 이기는 것이 목적이다. 상대팀에 대한 배려는 생각해보지 않았다”라고 했다. “좀 그렇다. (김 감독과의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라고 말을 이어간 이 감독은 “난 내 야구를 했다. 부끄러운 것은 없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기만했다는 것은 의외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 된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 감독은 취재진이 재차 질문하자 “김 감독과는 아무 감정이 없다. 불만도 없다. 그동안 쌓인 것도 없다. 난 쌓인 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사태를 진화했다. 또 이 감독은 “같이 살아가는 입장 아닌가. 김 감독이 후배라고 해서 밑으로 보는 것도 없다. 감독이라는 직책만 달고 있을 뿐 나도 잘난 게 없는 사람이다. 내 인생에 LG에 대한 기만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답답함이 묻어나는 어조였다.
결국 이번 사태는 서로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한 관계자는 “두 감독이 직접 만나 서로의 상황을 듣고 화해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했다. 하지만 13일 풍경만 놓고 보면 이른 시일 내에 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한편 장외 신경전이 그라운드까지 난입할 수 있었던 13일 경기는 우천으로 취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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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