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 웃음 찾은 비결 '자존심과 절박감'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2.09.14 10: 42

“FA는 무슨… 그만둘 생각도 하고 있는데…”
시즌 중반에 있었던 일이다. 항상 웃는 낯빛과 걸쭉한 입담을 자랑하는 ‘빅 마우스’ 이호준(36‧SK)의 얼굴이 갑자기 굳었다. “FA를 앞두고 있어서 잘 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동료들의 우스갯소리에 대한 반응이었다. 순식간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이제 시즌 막판에 이른 이호준은 당시를 회상하며 “그만큼 그때는 절박했다”라고 말했다.
SK 4번 타자 이호준의 지난 2년은 가파른 내리막이었다. 2010년에는 85경기 출장에 그치며 타율 2할7푼8리, 8홈런 46타점에 머물렀다. 2011년의 타율은 2할5푼3리였다. 93개의 안타를 치는 동안 78개의 삼진을 당했다. 팬들의 시선도 조금씩 싸늘해졌다. ‘로또’라는 별명이 한동안 그를 쫓아다녔다. 2003년과 2004년에 걸쳐 30홈런-100타점을 기록했던 강타자의 면모도 세월과 함께 사라져갔다.

어느덧 프로 19년차였다. 19년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성실하게 자기관리를 했다는 뜻이지만 반대로 언제든지 밀려날 수 있다는 것도 의미했다.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배수의 진을 쳤다. 아버지와 아내에게 “올 시즌도 안 되면 전반기에라도 그만두겠다”라고 ‘통보’했다. 그만큼 절박한 심정으로 도전했다. 겨울훈련도 충실하게 소화했고 한 타석을 소중하게 여겼다. 결국 이호준이 전반기에 유니폼을 벗는 일은 없었다.
이호준은 올 시즌 SK의 4번 타자 몫을 충실히 하고 있다. 13일 현재 타율 3할5리(전체 8위) 18홈런(6위) 71타점(5위)을 기록 중이다. 출루율도 높다. 4할7리로 리그 5위를 달리고 있다. 전성기가 다시 찾아온 듯한 모습이다. 이호준은 “내 출루율이 이렇게 높았던 적이 없었다. 출루율 순위에 내 이름이 있는 것이 신기하다”라고 웃었다. 이만수 SK 감독도 “올 시즌 팀 내 타자 MVP는 이호준”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렇다면 왜 이호준은 스스로를 벼랑 끝에 몰아넣으며 야구에 매달렸을까. 이호준은 “프로 20년을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존심이 있었다. 팬들과 팀에 대한 예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집안에도 이야기를 다 끝낸 상황이었다”라고 떠올렸다. 구차하게 선수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스스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럴 바에는 깨끗하게 끝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 강한 자존심과 절박함은 이호준에게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줬다.
절박함이 반전의 기회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책임감이 그를 이끌고 있다. 이호준은 후배들을 보며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가뜩이나 올 시즌 방망이가 부진한 팀 후배들이다. 이제는 그런 후배들에게 조언을 하면서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위치다. 이호준은 “예전에는 못 치면 후배들이 내 눈치를 보며 조용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못 치면 오히려 후배들이 나를 위로한다. 그리고 ‘형 하나 쳐 주세요’라고 부탁한다. 그런 후배들을 보며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마침 복도에는 현역 야수 최고참이자 한때 SK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최동수(39‧LG)가 지나갔다. 반갑게 맞이한 이호준은 “(최)동수형이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나이 먹어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나에게 보여준 사람”이라고 웃었다. 한동안 티격태격한 후 최동수가 발걸음을 떼자 이호준은 그 뒤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형님, 우리 50까지 합시다!”. 이호준의 미소가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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