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층에서 비롯된 균열, 넥센의 결별 통보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2.09.18 07: 25

"전력으로 가동할 수 있는 선수층은 얇은 편이다"-"왜 올려보지도 않고 먼저 선수층이 얇다고 하는가".
거쳐가는 감독이 아니라 팀의 상징성이 큰 감독이 떠났다. 그것도 주축 선수 팔기 과정이 연이어 이어져 야구인들은 물론 팬들에게까지 연민을 자아내던 그 감독이다. 넥센 히어로즈가 창단 5시즌 중 4년을 함께한 김시진 감독과의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넥센은 올 시즌 15경기를 남겨둔 상태에서 지난 17일 "2009시즌부터 지휘봉을 잡았던 김시진 감독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다"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타 구단이 '자진 사퇴'라는 발표를 한 것과 달리 넥센의 보도자료에는 '계약 해지 통보'라는 단어가 선명히 새겨졌다. 2007시즌 전신 격인 현대 유니콘스의 지휘봉을 잡았던 김시진 감독은 2008년 히어로즈 태동과 함께 1년 간 KBO 경기감독관으로 재직한 뒤 2008년 말 다시 히어로즈 감독으로 취임했다.

2009년 12월 30일 팀에서 이택근(넥센, 당시 LG), 장원삼(삼성), 이현승(상무, 두산) 주축 3인방을 팔고 마일영(한화), 황재균, 고원준(이상 롯데), 송신영(한화, 당시 LG), 김성현(전 LG) 등 주축과 미래의 동량들이 잇달아 팀을 떠나는 가운데서도 팀을 지켰던 김시진 감독인 만큼 타 팀 감독들보다 상대적으로 팀에 대한 상징성이 컸다. 2011시즌 전 추가 3년의 재계약 협상까지 맺었다. 그런데 그 감독이 하루 아침에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지난해 재계약 당시 이장석 사장은 "2013년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팀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며 김시진 감독의 재신임한 이유를 밝혔다. 현역 감독들 중 팀 사정과 유망주들의 면면을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1년 반 만에 김시진 감독이 갑작스레 낙마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 야구인은 그에 대해 "김시진 감독이 '2군에서 올릴 유망주가 없다'라는 이야기를 자주했고 구단 측에서는 이를 불편하게 여겼다"라고 밝혔다. 1군에서 마땅치 않은 부분이 있다면 퓨처스팀에서 괜찮은 활약을 보이는 유망주를 보다 적극적으로 기용해 경험이라도 쌓아주는 것이 좋다는 것이 구단 측의 이야기였다.
실제로 김시진 감독은 "선수가 가장 좋은 힘을 보여줄 수 있는 때는 21~22세 가량이다. 고교 졸업 후 바로 프로에 입단하는 선수는 3년 정도 2군에서 기량을 연마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지만 대졸 입단 선수는 어떻게라도 즉시 전력감이 되어야 한다"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는 유망주 선수들의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안이었으나 구단 입장에서 보면 신인 지명과 육성에 관련한 일침으로도 들릴 수 있다. 이 이야기가 외부로도 새어나오며 김시진 감독과 구단의 사이에는 점점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나 올 시즌은 넥센이 8개 구단 중 가장 먼저 20승 고지를 밟았다. 20승 고지 선착은 1983년 삼미와 1999년 LG를 제외하고 모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등(성공률 93.8%) 대단한 보증수표와도 같은 지표였다. 그만큼 김시진 감독이나 구단이나 많은 것을 걸었던 한 해였다. 이택근-박병호-강정호로 이어지는 중심 타선이 구축되었고 브랜든 나이트-앤디 밴 헤켄 원투펀치, 마무리 손승락 등 강팀의 필수요소로 꼽히는 구도도 완성된 한 해다. 그만큼 김시진 감독도 감독 재임 이래 첫 포스트시즌 진출의 꿈을 꿨으며 구단에서도 점차 기대치를 키운 시즌이었으나 이제 산술적으로 밖에 4강 진출 가능성이 남지 않았다.
한여름 떨어지는 순위를 보며 김시진 감독은 "상대적으로 1군 실전에 투입할 만한 선수층이 얇아 고전하고 있다"라는 평을 내놓았다. 반면 넥센 구단 측은 "왜 2군의 유망주를 써보지도 않고 먼저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는가"라며 김시진 감독의 이야기를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이미 김시진 감독과 구단의 균열이 심각하게 변해간 과정이다.
또다시 패배에 익숙해지면서 구단 내에서도 김시진 감독에 대한 불만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어느덧 재임 4년이 되었다"라며 운을 뗀 한 관계자는 지난 10일 대구 삼성전(4-9 패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경기가 초반에 기울어지자 포기하는 인상을 보이더니 막판에는 그나마 계투진에서 괜찮은 공을 던지는 선수들을 투입하며 이상한 전략이 되어버렸다"라며 힐난했다. 한때 현장과 프런트의 신뢰도가 두터운 편이었으나 어느새인가 루비콘 강을 건너버린 형국으로 변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구단이 선수들의 힘을 높게 평가하기 시작하면서 전반기 분전에도 불구, 후반기 급격히 떨어진 팀의 페이스를 들어 김시진 감독의 전격 경질을 결정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구단이 어려운 순간에도 팀을 지켰던 김시진 감독이었음을 감안하면, 3년 재계약 시간 중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현재 매몰찬 중도 경질이 이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너무도 안타깝다고 볼 수 있다.
김성갑 수석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임명한 구단 측은 "새로운 5년에 걸맞는, '우승'이라는 큰 그림에 걸맞는 감독을 찾겠다"라고 밝혔다. 일단 그 5년 간은 이전의 주축 선수 팔기가 없을 것이라는 구단의 호언장담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김시진 감독은 히어로즈 재임 4년 간 믿고 맡길 수 있는 즉시 전력 주축들의 타 팀 이적을 너무 자주 겪었던 지도자다. 팀의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감독이 하루 아침에 낙마한 사건. 너무나 특수하면서도 스트레스도 극심한 프로야구 감독이라는 직업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려주는 씁쓸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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