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런트들이 약속이나 한 듯 칼을 뽑아 들었다. 최근 2년 동안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칼춤을 췄다. 그러나 춤사위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수준 낮은 칼춤에 감독의 품격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넥센은 17일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4년 가까이 팀을 이끌었던 김시진 감독의 경질을 발표했다. 이유는 성적 부진이었다. 다른 구단들이 흔히 사용했던 ‘자진사퇴’라는 포장지조차 쓰지 않은 전격 경질이었다. 그렇게 김시진 감독은 시즌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쓸쓸하게 퇴장했다.
이로써 8개 구단의 사령탑은 2년 만에 모두 물갈이됐다. 지난해를 앞두고 선동렬 감독이 삼성 지휘봉을 내려놓은 것을 시작으로 현역 감독 중에는 가장 오랜 기간 팀을 맡았던 김시진 감독까지 낙마했다. 물론 감독 경질 및 교체라는 현상 자체만 놓고 보면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점이 있다. ‘프런트 야구’의 득세다.

현장과 프런트는 오묘한 관계다. 동반자이면서도 파워게임의 상대가 되기도 한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양자는 끊임없이 힘을 겨뤄왔다. 때로는 현장이 힘을 얻기도 했고 프런트가 현장에 개입해 세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2년 사이에는 무게추가 완전히 프런트 쪽으로 기울어졌다. 이에 야구인들은 “현장을 지원해야 할 프런트가 오히려 현장을 쥐락펴락하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선동렬 현 KIA 감독부터가 그랬다. 삼성을 두 차례나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선 감독은 2009년 삼성과 5년 재계약을 했다. 당시 관계자들은 장기 계약을 들어 획기적인 결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선 감독은 1년 만에 팀의 지휘봉을 내려놨다. 자진사퇴의 형식을 빌렸지만 구단 고위직의 교체 과정에서 선 감독이 힘을 잃었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현역 최고령 감독이었던 김성근 현 고양 원더스 감독도 지난해 퇴진 과정에서 SK 프런트와 마찰을 빚었다. 결국 김 감독은 “시즌이 끝난 뒤 사퇴하겠다”라고 폭탄 선언했고 SK는 하루 만에 ‘경질’이라는 초강수로 맞섰다. 지난해 막판에는 박종훈 전 LG 감독과 조범현 전 KIA 감독도 자진사퇴했다. 모두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한 사실상의 경질이었다. 자진사퇴라는 미명 뒤에 프런트가 숨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올 시즌 중도에 옷을 벗은 한대화 전 한화 감독과 김시진 전 감독도 퇴진 과정이 깔끔하지 않았다. 한화는 단장까지 나서 “시즌 중 감독 교체는 없다”라고 공언했지만 한낱 공염불임이 드러났다. 지난해 계약기간이 남은 김 감독에게 3년 재계약을 제의하며 신임을 과시했던 넥센도 한순간에 낯빛을 바꿨다. 팀이 어려울 때 동고동락했던 김 감독에 대한 예의나 의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성적에 대한 책임은 감독이 지는 것이 맞다. 그만큼 감독의 권한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막대한 권한을 휘두르는 대신 언제 실업자가 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떨어야 한다. 그렇다 해도 팀을 위해 애쓴 감독에 대한 매끄럽지 못한 처사는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당장 구단 이미지에도 타격이 크다. 프런트의 어설픈 칼춤이 프로야구 감독의 권위와 품격을 추락시키고 있다. 지금은 만족스러울지 모르지만 그 부메랑은 결국 프런트 자신들을 조준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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