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섭(33)의 활약을 기대했던 KIA 타이거즈의 팬들은 올 해 내내 그 기대를 채우지 못했다. 이제 그는 KIA의 4강행이 가능성 여부가 결판나는 지난 주말까지 경기를 지켜본 후 치루 수술을 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선동렬 감독은 지난 12일 언론 인터뷰에서 최희섭이 치루 수술을 이미 받은 것으로 알고 있고, 그가 이번 시즌을 이렇게 마감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올해 장염, 요로결석 등으로 전력에서 이탈되는 일이 잦았던 그가 또 다시 병을 사유로 팀을 이탈하게 되자 감독은 아쉬움을 감추지 않고 표시하였다.
최희섭이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인지, 아니면 이미 한 상황인지의 사실관계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바로 최희섭에 대한 감독의 믿음과 기대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감독의 선수에 대한 신뢰가 단순히 몇 번의 병치레나 부상으로 금이 가지는 않을 것이다.

최희섭은 이번 시즌이 시작하기 전 ‘무단 이탈 파문’과 ‘트레이드 논란’을 빚으며 팀과 팬들에게 적잖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던 사실이 있다. 그는 팀으로 복귀를 결정한 뒤에 팀 회식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를 했고, 백의종군하는 심정으로 2군에서 훈련을 성실하게 임했으며, 감독에게도 몇 차례 잘못을 빌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그를 받아들이는데 고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현과 이범호의 공백이 생겼고 팀은 최희섭을 필요로 했다. 결국 감독은 많은 고민 끝에 최희섭을 받아들였다. 선수가 미안하게 생각하는 그 진심을 1군 무대에서 성실하게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을 가져보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그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최희섭의 올 시즌 타율은 2할5푼2리, 홈런은 7개를 기록하고 있다. 박병호가 28개의 홈런, 이승엽이 21개, 김태균이 16개의 홈런을 때려낸 것과 비교할 때 팀의 대표 거포라 하기에는 많이 아쉬운 성적표이다. 각종 논란을 빚어냈던 겨울 동안 충분한 훈련과 준비에 차질이 있었던 터라 구단과 팬의 기대에는 한참 못 미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진심이 성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상황은 그에게 기대를 가졌던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면서 그의 진심을 의심하게 만드는 실마리를 제공하게 만들었다.
팀의 4강행 동아줄이 잡힐 듯 말듯한 중요한 시점에서 감독은 모든 선수들의 전력투구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런 시기에 전력의 이탈이 불가피해지는 부상이 발생하는 상황은 감독이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팀의 4강행에 막바지 힘을 보태야 할 시기인 8월과 9월의 최희섭의 공백은 결정적이었다. 결과적으로 팀의 4강행 의지에 바람을 빼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제는 심지어 그의 야구에 대한 열정까지 의심받기 시작했다.
지금 최희섭은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다. 수술을 잘 마치고, 재활도 잘 해내고, 체력도 회복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구단과 팬들의 신뢰도 회복해야 한다. 야구에 대한 열정과 의지, 자신에 대한 책임감이 누구보다도 강한 선수이지만 그것만으로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그가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 동안의 부진을 일거에 만회하고, 좋은 성적으로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오히려 부담감으로 작용하여 독이 될 수 있다.
신뢰는 상대에게 요구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뢰는 기본적으로 성실하고 투명하게 행동해야 얻을 수 있다. 특히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그가 올해 야구장에서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없지만, 그와 우리 사이에는 내년 시즌이 있다. 아니 앞으로 몇 년의 시즌이 더 있다. 남들이 최희섭에게 기대하는 목표가 아닌, 가장 현실적이고 달성할 수 있는 자신만의 목표를 세우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서 하나씩 일치된 모습이 드러나고 쌓여질 때, 선수도 성장하고, 선수에 대한 우리의 신뢰도 쌓여갈 것이다.
/고려대 학생상담센터 상담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