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첫 100만 관중'과 뜻 깊은 SK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2.09.18 10: 43

프로야구 태동 후 인천 야구는 '짠물 야구'라는 별명을 얻었다. 투수들이 짠물투로 상대 타자들을 고전하게 하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그들을 향한 타선 지원도 짭짤한 편이었다. 삼미-청보-태평양 시절까지 인천 프랜차이즈 팀이 리그의 강호로 포스트시즌까지 진출했던 적은 1989년과 1994년뿐이었다.
1996년 태평양을 인수한 현대 유니콘스와 함께 비로소 인천 팬도 팀 성적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으나 그들은 1999년을 마지막으로 인천을 떠났다. 전주를 연고로 하던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단을 승계해 창단한 SK 와이번스가 인천에 자리 잡았으나 상위권 성적에 오르는 데는 3년이 걸렸다. 그 팀이 2000년대 후반부터 지난해까지 5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강호가 되었다. 팬들은 우리 팀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며 문학구장을 찾았고 어느새 한 시즌 홈 100만 관중을 동원하는 기록까지 세웠다.
SK는 지난 15일 문학 KIA전에서 인천 연고팀 사상 처음으로 단일 시즌 100만 관중을 돌파했다. 올 시즌 SK의 60번째 홈경기인 15일 문학 KIA전에 1만5676명의 관중이 입장하여 누적 관중 101만3174명(평균 관중 1만6886명)을 기록한 것이다. 이를 기념해 SK는 지난 16일 문학 KIA전에서 '터치 100만 페스티벌' 행사를 가졌고 선수들은 기념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활보했다. 경기 후에는 선수단이 대구 삼성전 원정을 떠나기 전 팬들과 사인회를 갖는 뜻깊은 자리도 마련되었다.

수석코치로 일하던 첫 해인 2007년 만원 관중 속 팬티 세리머니를 펼쳤던 이만수 감독은 홈 팬 100만 관중 기록 달성에 대해 굉장히 기뻐했다. "야구인으로서 굉장히 감사하다. 구단에서도 구장 리모델링 등 팬들의 편의를 위해서 노력했고 선수들도 문학구장을 찾아주는 팬들을 위해 더욱 열심히 뛰어주는 모습을 보여줬다. 2007년 팬티 세리머니 때 경기 당 평균 4000명의 팬들이 구장을 찾아주신 것이 엊그제 같은데"라며 이 감독은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부산과 서울, 그리고 인천이 한 시즌 홈 100만 관중 기록을 달성했다. 2013년 말 완공된다는 광주 구장도 2만5000여명의 팬들을 수용할 수 있다던데 다음에는 광주가 홈 100만 관중 기록을 돌파해 야구 붐에 일조해줬으면 좋겠다. 팬이 없다면 프로야구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SK는 거물 선수가 영입된 경우도 있었으나 팜에서 실력을 키워 팀을 강호로 만든 프랜차이즈 선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팀이다. 몸을 사리지 않고 뛰는 허슬 플레이어도 많았으며 그 선수들이 팀의 상위 성적을 이끌며 팬들의 발걸음도 문학구장으로 향했다. 선수들이 이끄는 상위 성적에 팬들도 자긍심을 갖고 한 시즌 안방 100만 관중 대기록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구단에서도 구장 리모델링과 여러 가지 이벤트를 통해 관중몰이에 더욱 힘을 기울였고 팬, 구단, 선수단의 노력이 값진 결과물을 낳았다.
사인회를 마치고 원정 이동을 위해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던 박희수, 최정, 이재원의 모습도 우연히 볼 수 있었다. 승강기에 함께 있던 팬은 수줍게 선수들을 향해 "팬이에요"라며 말을 건넸고 선수들도 상기된 표정으로 '감사합니다'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마운드와 그라운드에서 거침없이 공을 던지고 뛰는 선수들이었으나 그라운드 밖에서는 그저 순박한 청년들이었다. 이뤄내기 힘든 홈 100만 관중 기록의 원천이 된 이들이었음에도 말이다.
팬이 없다면 프로야구 선수도 없다. 반대로 열심히 뛰는 선수들이 없다면 팬도 야구장을 찾지 않는다. 또한 팬들의 편의를 위한 구단의 노력이 없다면 팬들의 애정이 식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SK의 '인천 프랜차이즈 최초 100만 관중 동원'은 팬과 선수, 구단의 노력 3박자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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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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