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54) SK 감독은 현역시절 활발함의 대명사였다. 에너지가 넘쳤다. 감독이라는 무거운 감투를 쓴 뒤에도 성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프로야구 역사상 이런 스타일의 감독은 없었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요즘은 아니다. 얼굴에 활기가 사라졌다. 이 감독은 최근 자신이 전면에 나서는 상황 자체를 피하고 있다. 행동 하나하나가 신중하다. 목소리에도 힘이 빠졌다. 시즌 초반과 비교하면 너무 조용한 행보다. 지난해 팬들의 갑론을박 속에 감독대행으로 부임했을 때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이 감독은 감정표현이 솔직한 편이다. ‘헐크’라는 별명 그대로다. 선수들이 홈런을 치면 함께 기뻐했고 그래서 때로는 과한 세리머니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렸다. 그러나 최근에는 홈런을 치고 들어온 선수들과 하이파이브조차 하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자제하고 있는 인상이 역력하다.

야구 관계자들은 몇 가지 사건이 이 감독을 움츠리게 했다고 지적한다. 이 감독의 말수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시즌 중반 8연패에 빠졌을 때부터다. SK는 6월 28일 대구 삼성전부터 7월 11일 문학 넥센전까지 8경기를 내리 졌다. 2006년 이후 처음 있는 일에 팀 순위는 선두권에서 6위까지 추락했다. 선수와 코칭스태프들의 마음고생이 심했을 때다.
연패가 길어지자 이 감독의 이전 발언이 구설수에 올랐다. 이 감독은 7월 초 “8월말까지 플러스 18승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었다. 그런데 정작 팀은 5할 승률도 지키지 못하자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감독을 위해 이겨달라”라는 발언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 관계자는 “그때부터 이 감독이 신중해졌고 논란이 될 만한 말들은 자제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최근 들어서는 두 가지 사건이 겹치기도 했다. 모두 이 감독의 얼굴에서 웃음을 뺏는 악재였다. 9월 12일 잠실 LG전에서는 김기태 LG 감독의 ‘투수대타 작전’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김 감독은 다음날 “SK 불펜 운영에 대한 불만 표출”이라며 노골적으로 이 감독을 겨냥했다. 그동안 이 감독에게 쌓였던 것이 폭발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었다. 이 감독으로서는 상처였다. 점차 강도가 약해지던 세리머니는 그 사건 이후 사라졌다.
17일에는 절친한 사이였던 김시진 넥센 감독이 경질됐다. 이 감독으로서는 충격이었다. 현역 시절 투수와 포수로 호흡을 맞췄던 두 감독은 평소 두둑한 친분을 과시했다. 이 감독은 김 감독의 경질소식에 “여러 가지로 아쉽고 마음이 좋지 않다. 내가 초보감독 아닌가. 김 감독으로부터 위로와 조언을 많이 받았다. 넥센과 경기하기 전에는 차도 한 잔하면서 장난도 치고 그랬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 구단 관계자는 “감독님이 (경질) 소식을 들으시더니 ‘마음이 허하다’고 하시더라”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감독은 18일 사직 롯데전에 앞서 프로야구 감독 중 최연장자가 됐다는 취재진의 말에 “초짜가 무슨… 조용히 있어야지”라고 또 한 발 물러섰다. “매 경기 최선을 다하겠다”며 각오를 다지고 있는 이 감독이지만 마음 한구석은 분명 편안하지 않아 보인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