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우규민, 후배에게 모범되는 10년차 베테랑
OSEN 윤세호 기자
발행 2012.09.21 10: 45

“우리가 함께 경찰청에 있을 때, 너는 아무 것도 아닌 그저 재활투수였다. 지금이 많이 힘들겠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서 힘내라. 이대로 하면 언젠가 승은 따라온다.”
6월의 어느 날. LG의 사이드암 투수 우규민(28)은 지난 2년 동안 함께 경찰청에서 뛰었던 후배 좌완투수 이승우(24)를 향해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당시 이승우는 불운과 부진이 겹치며 선발로 등판한 10경기에서 1승도 따내지 못하고 5연패로 매번 고개를 숙이곤 했다. 다행히 이승우는 6월 13일 잠실 SK전에서 고대하던 첫 승을 따냈고 우규민도 그 날 팀의 세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이승우의 선발승을 도왔다.
프로 입단 3년차만에 마무리투수로 마운드에 오르며 환희와 좌절을 모두 경험했던 우규민도 어느덧 10년차 베테랑 투수가 됐다. 2006시즌 중반부터 마무리투수로 내정, 17세이브 평균자책점 1.55로 뒷문불안에 시달리던 LG에 희망을 전했다. 풀타임 마무리투수로 뛴 이듬해에는 30세이브로 궤도에 올랐다. 그러나 2008, 2009시즌 2년 동안 평균자책점 5.24로 부진했고 이후 경찰청에 입대해 군복무에 임했다.

비록 2군 리그지만 우규민은 경찰청 입대를 통해 변화를 다짐했다. ‘우규민=불펜투수’라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 선발투수를 자원하면서 경찰청의 에이스로 등극, 2011시즌 퓨처스리그 성적 15승 무패 평균자책점 2.34로 북부리그 최우수 투수상을 차지했다. 군복무를 통해 구위와 제구력이 한층 발전된 만큼, 올 시즌 우규민에 대한 주위의 기대치 역시 높았다. 하지만 시즌 초인 4월 평균자책점 4.85로 흔들렸고 5월 5일에는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2년 만에 밟는 1군 마운드라서 그런지 시즌 초반부터 너무 잘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었다. 군대 가기 전까지 마무리투수를 하기도 했고 경찰청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기 때문에 당장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게 다 부담으로 안 좋게 작용했다. 전지훈련부터 페이스가 늦게 올라왔고 그게 시즌 초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부진은 일시적이었다. 5월 23일 다시 1군 엔트리에 합류한 후 5월 평균자책점 2.08로 불펜진의 중심에 자리했다. 선발투수가 일찍 무너진 날에는 2, 3이닝을 던지며 선발투수의 부진을 만회했다. 지난 6월 16일 군산 KIA전에선 전날 복통으로 등판이 취소된 에이스 주키치를 대신해 긴급 선발투수로 내정, 1군 첫 선발 등판에서 7이닝 1실점의 역투를 펼쳤다. 팀 사정에 의해 다시 불펜으로 복귀했지만 팀이 필요로 하는 자리면 어느 곳이든 가리지 않았다. 올 시즌 우규민은 86⅔이닝을 소화하며 통산 최다 이닝을 기록 중이다.
“어쩌다보니 올 시즌 이런저런 보직을 다 맡게 됐다. 시즌 중간 임시 선발로 나오기도 했는데 그러다가 중근이 형이 빠지고 불펜진이 약해지면서 다시 불펜으로 돌아갔다. 사실 우규민하면 불펜투수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이런 것을 스스로 깨뜨리기 위해 경찰청에서 선발투수를 자원했었다. 그래도 경찰청에서 선발투수로 뛰었기 때문에 올 시즌에도 선발투수로 등판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물론 선발투수에 대한 욕심도 있다. 솔직히 선발로 안 뛰고 싶은 투수가 누가 있겠나. 하지만 팀이 우선이다. 내가 실력이 된다면 선발투수로 뛰면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팀에 도움이 되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던지려고 한다.”
팀을 위해 희생한다는 우규민의 마음가짐은 후배 투수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전달됐다. 자신은 입단 후 1군에서 긴 시간을 막내로 보냈고 그로인한 고생도 많았지만 이제는 10년차 프로선수로서 선배들과 후배들 사이 중간 다리 역할에 적극적이다. 올 시즌 어느 때보다 신예투수들이 많이 나온 상황에서 우규민은 이들을 위해 조언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프로 입단하고 1군에서 5년 동안 쭉 물당번이었다. 그야말로 계속 막내였다. (정)창헌이, (이)범준이 정도가 후배였는데 후배를 챙기려하니 곧 군입대했다. 군대에서 돌아오니 갑자기 후배들이 많이 생겼고 나도 어느덧 중고참의 위치에 섰다. 내 성격상 남에게 엄격하게 대하는 건 잘 못한다. 그래서 그냥 후배들과 친하게 친구처럼 지내는 게 투수조 전체를 봤을 때 좋다고 생각했다. 막 입단한 후배들과는 7~8년이나 차이가 나지만 경기 내외로 많이 이야기를 나누는 게 결국 팀을 위해 좋은 방향이라고 본다. 후배에게 지시하기 보다는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편이다. 그동안 투수조에서 봉중근 선배가 나를 위해 조언해주셨던 만큼 이제 나도 후배들에게 그대로 베풀려고 한다.”
시즌 종료까지 12경기, 약 2주 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우규민은 목표로 개인 성적이 아닌 팀 성적을 내걸었다. 비록 팀은 10년째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2013년 희망의 신호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투수진이 하나로 뭉쳐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남은 시즌 목표는 팀 평균자책점 3점대를 찍는 것이다. 지금 팀 평균자책점이 딱 4.01인데 우리 팀이 2003년 이후에는 팀 평균자책점이 계속 4점 이상이었다. 다행히 후반기에 공이 더 좋다. 비록 팀이 10년 째 포스트시즌에 못나가고 말았지만 그래도 올 시즌에 긍정적인 부분이 많이 나왔다고 본다. 내가 입단했을 때만 해도 1군에는 어린 투수들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신예 투수들이 많이 등장했다. 이들이 이대로 계속 성장하면 분명 앞으로의 LG는 지난 10년과 다를 것이다. 시즌 마지막 날, 마지막 경기까지 투수조 선배님, 후배들과 함께 꼭 목표를 이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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