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승엽, "힘들어도 정말 행복한 복귀 첫해"
OSEN 손찬익 기자
발행 2012.09.21 10: 55

삼성이 한국시리즈 직행을 향한 매직 넘버를 '9'로 줄인 20일 밤 '국민타자' 이승엽(36,삼성)과 전화 통화가 닿았다.
9년 만에 국내 무대에 복귀한 그는 올 시즌을 되돌아 보며 "힘들지만 정말 즐겁다. 무엇보다 1년간 뛸 수 있다는 자체가 내겐 큰 행복이다. 2008년부터 4년간 풀타임으로 뛰지 못했는데 아주 기쁘다. 이런 게 바로 내가 하고 싶었던 야구"라며 "말 그대로 'Enjoy Baseball', 'Enjoy Life'다. 물론 즐거움 속에 고통은 따른다.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나 주위 시선 같은. 그래도 고향팀에서 즐겁게 뛸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고 벅찬 소감을 전했다.
이승엽은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뛰던 지난해 8월 6일 일본 지바 QVC 마린필드에서 열린 지바 롯데와의 원정 경기 도중 2회 파울 플라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왼쪽 어깨를 다쳤었다. 지난해 11월 삼성트레이닝센터에서 체력 훈련을 소화하면서 어깨 부상 치료에도 병행했으나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다. 어깨 통증은 타격 밸런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괌 전훈 캠프 때 제 스윙을 못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괌 1차 전훈 때 어깨가 너무 아팠다. 10m 거리 캐치볼도 힘들 정도였으니. 작년에 어깨 부상을 입은 뒤 괜찮을 줄 알았는데 몇달간 계속 됐다. 스윙할때 통증이 남아 있었다. 일본 오키나와 2차 전훈을 앞두고 주사 치료를 받은 뒤 아주 호전됐다. 스윙을 제대로 하지 못해 걱정이 컸던 게 사실이다. 그땐 정말 심각했었다".
이승엽은 홈런 타자의 대명사. 통산 5차례(1997, 1999, 2001, 2002, 2003년)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했고 2003년 아시아 한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56개)을 비롯해 최소 경기 및 최연소 300홈런을 수립하기도 했다. 그리고 7월 29일 목동 넥센전에서 사상 첫 한일 통산 500홈런을 쏘아 올렸다. 9년 만에 국내 무대에 복귀한 그는 거포 이미지보다 좀 더 정교해진 모습이 짙다.
이승엽은 "프로 무대에서 18년간 뛰었던 경험과 세밀한 일본 야구 모두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사실 10년 전 내 모습과 비교하는 자체가 조금은 무리가 아닐까. 기대치를 높인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 역시 '10년 전에는 됐는데 지금은 왜 안 될까'라고 생각한다면 발전이 없다. 지금은 10년 전의 모습은 버리고 현재 상태에 맞는 야구를 해야 한다. 가끔씩 나도 답답할때도 없지 않다"며 "예전 같으면 그냥 넘어 가는 타군데 이젠 잡히는 것도 많다. 그러한 부분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면서 마음이 가벼워 진다고 해야 할까. 세월의 흔적은 지울 수 없으니까"라고 겸허히 받아 들였다.
개인 통산 홈런 신기록 경신 또한 마찬가지. 이승엽은 "올 시즌은 쉽지 않을 것 같다. 20홈런을 기록한 뒤 마음을 비웠다"고 말했다. 포기는 아니다. 조금 미뤘을 뿐이다. "다치지 않는다면 내년에도 칠 수 있다.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는 10년 전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홈런 경쟁이 정말 치열했는데 홈런 때문에 스윙이 너무 커졌다. 한국시리즈에서도 그 스윙이 몸에 배어 있었다. 되게 안 좋았다. 당시 실패했던 걸 반복하고 싶지 않다". 파괴력보다 정확성에 초점을 맞출 생각. 그는 "포스트시즌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큰 스윙보다 정확성 위주의 타격을 해야 한다. 여러가지 복합적인 면에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삼성의 중심 타선을 이끄는 최형우(29, 외야수)와 박석민(27, 내야수)을 바라보는 이승엽의 시선은 어떠할까. "같은 선수로서 판단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는 게 이승엽의 설명. "기술적인 부분이든 정신적인 부분이든 판단을 해선 안되고 하고 싶지 않다. 내가 나이를 더 먹고 야구를 몇 년 더 했을 뿐이다. 같은 선수 입장에서 평가한다는 건 정말 조심스럽다".
이어 그는 "정말 열심히 하고 야구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형우는 성직이 좋지 않아도 티내지 않고 부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석민이는 워낙 성격이 좋으니 잘 하든 못 하든 언제나 똑같은 모습이다. 그런 자세를 보면서 나와 다르다는 걸 느낀다. 비단 형우와 석민이 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워낙 자기 역할을 잘 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승엽은 '라커룸의 진정한 리더'라는 표현에 대해 "절대 아니다. 그저 삼성 라이온즈 일원 가운데 한 명일 뿐"이라고 겸손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이승엽이 복귀한 뒤 삼성 타선이 한 단계 나아졌다"고 흡족한 반응을 보였다. 이에 이승엽은 "항상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본다"며 "코칭스태프, 함께 뛰는 동료들 그리고 나를 믿고 계약한 구단을 위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 안되기에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다. 프로 선수라면 누구나 자기 역할이 있고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자신을 낮췄다.
한국시리즈를 앞둔 그의 각오도 궁금했다. "복귀 첫해 가을 무대를 밟게 돼 무척 기쁘다"는 이승엽은 "2002년을 제외하고 포스트시즌 성적이 좋았던 것 같다. 한국시리즈에 직행하게 되면 2~3주 정도 여유가 있으니 컨디션 조절 잘 하고 욕심도 버리고 연습 경기를 치르며 페이스를 끌어 올려야 한다".
기복을 줄이는 게 최대 관건. 이승엽은 "한 번 터질땐 확 터지고 그렇지 않을땐 안 터지는 편"이라고 했다. 2005년 지바 롯데 시절 타율 5할4푼5리(11타수 6안타) 3홈런 6타점 4득점 맹타를 휘두르며 소속 구단의 정상 등극을 이끌었던 그는 요미우리 시절이었던 2008년 타율 1할1푼1리(18타수 2안타) 2득점, 2009년 타율 2할5푼(12타수 3안타) 1홈런 2타점 1득점으로 주춤했다.
이승엽은 "일본 시리즈 3차례 진출했었는데 지바 롯데 시절에는 굉장히 좋았는데 요미우리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며 "조금씩 조금씩 이겨내야 한다. 단기전에서 기복을 줄여야 한다. 짧은 스윙을 강조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이승엽은 "국내 무대에 복귀한 뒤 과분할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다. 늘 감사하고 복귀하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내게 힘을 주신 모든 분들을 위해 반드시 우승으로 보답하겠다"고 정상 등극을 향한 열망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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