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밀 카메라를 이용해 선수들의 플레이를 다각도로 그리고 세세히 집중적으로 분석, 파고드는 중계기술의 발달은 야구팬들에 더없이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존재가치를 더해가고 있지만 판정의 정확성을 기계 앞에서 심판 받아야 하는 판정관들의 입지는 그에 반비례해 더욱 좁아지는 형국이다.
지난 9월 18일 포항구장에서 열렸던 삼성과 한화 경기와 사직구장에서 같은 날 열렸던 롯데와 SK 간의 경기에서는 일부 기록판정을 놓고 그러한 판정이 내려진 이유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는 팬들의 문의가 잇달았는데, 판정의 옳고 그름을 떠나 시대의 변화에 따른 기록원들의 고민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한번쯤 되새김질 해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라 여겨진다.
우선 포항경기에서 제기된 부분부터 짚어보도록 하자. 6회 말 삼성공격 2사 2루 상황에서 6번타자 진갑용이 때린 타구가 실책이 아닌 내야안타로 기록되어 결과적으로 한화 선발 류현진의 실점(3점)이 모두 자책점으로 처리된 것에 대한 설명이다.

이 부분에서 제기된 지적은 타자주자 진갑용의 발보다 먼저 2루수의 송구가 1루에 도착해 타이밍상 아웃이었고, 여기에 1루수 장성호가 잡아줄 수 있는 송구를 빠뜨린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안타가 아닌 실책으로 기록됐어야 한다는 것.
이러한 정황설명에 의지하자면 당연히 실책이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이 하나 빠져있다. 그것은 2루수의 송구동작이다. 당시 2루수 하주석은 중견수 방향으로 치우친 타구를 쫓아가 잡는 과정에서 중심이 유격수쪽으로 완전히 쏠려있었다. 이로 인해 힘을 실은 1루 송구가 어려웠고, 송구 또한 실제로 완만하고 다소 짧은 감이 있었다.
타자주자의 1루 타이밍이 완전 아웃타이밍이었다고 해도 송구자의 송구자세나 상황이 쉽지 않은 형태였다면 타자에게 유리하도록 판정, 실책이 아닌 안타로 기록하도록 기록규칙은 명시하고 있다.
타구는 그렇다 치고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1루수가 그 공을 잡을 수 있었느냐의 문제이다. 타구가 아무리 안타성이었다 하더라도 마지막 포구자가 잡을 수 있는 송구를 놓쳤다면 그것은 실책으로 기록된다.
느린 화면상으로는 다소 송구가 낮고 짧은 감이 있었지만 장성호가 잡아줄 수 있는 송구로 볼 수도 있는 정황이었다. 그러나 공식기록원은 쉽게 잡기 힘든 송구로 보고 포구자가 아닌 송구자 실책으로 판단했고, 결과적으로 원 히트 원 에러로 판정을 내렸다. 여기에는 기록실의 위치도 한몫을 했다.
올해 새로 개장한 포항구장 기록실의 위치는 4층 높이에 자리하고 있다. 게다가 전면에는 완전한 통 유리로 막혀있어 타구의 소리는 물론, 타구의 세기와 바운드 높이, 송구의 형태와 불규칙 바운드 발생을 식별해 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이러한 어려움을 반영해 시즌이 끝난 뒤 기록실을 1층으로 이전하는 공사에 들어가기로 예정되어 있지만 어쨌든 이날 상황만을 놓고 본다면 낮고 짧아 보였던 2루수의 송구를 1루수가 용이하게 잡을 수 있었는지 아닌지를 육안으로 기록실에서 가려내기란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다.
다음은 같은 날 사직구장에서 나온 선수에겐 상당히 억울할 수 있는 장면에 대한 얘기다. 역시 6회초 SK의 공격 무사 1루에서 9번타자 최윤석의 타구가 투수 고원준의 글러브를 튕기고 2루쪽으로 굴러가면서 벌어진 일이다. 느린 화면상 굴절된 타구는 공교롭게도 2루 부근에 서 있던 유격수 문규현 앞으로 평범한 땅볼 형태로 굴러갔고, 문규현이 잡아 1루에 송구만 하면 타자주자를 잡아낼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러나 때마침 문규현이 글러브를 내미는 순간 앞으로 1루주자 김재현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면서 타구는 김재현의 헬멧을 스치고 방향이 틀어져 옆으로 흘렀고, 2루수가 대신 잡아 1루에 송구했지만 타자주자는 세이프.
이 상황에 대한 공식기록은 유격수 문규현의 실책. 포수 뒤쪽 기록석에서 바라본 내용은 굴절된 타구가 문규현의 글러브를 맞고 옆으로 흐른 것으로, 육안으로는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는 그런 그림이었다.
이후 상황에 대한 이의가 제기된 것은 경기가 끝나고 난 뒤였다. 중계 화면상으로 문규현의 글러브가 아닌 주자의 헬멧에 타구가 닿은 것이 확인되었고, SK측은 정정 가능성을 타진해왔다. 기록을 정정하자면 최윤석의 기록은 실책에 의한 출루가 아닌 내야안타가 되어야 했고, 문규현의 실책도 자연 소멸되어야 했다.
그러나 기록은 정정되지 못했다. 시야가 가렸다거나 하는 등의 문제로 기록원이 상황을 볼 수 없었던 상황에 대해선 24시간 안으로 규칙에 못박혀 있는 기한 내의 기록정정이 가능할 수 있지만, 현장 기록원 모두가 의심의 여지 없이 그렇게 확신했던 상황을 놓고 TV 리플레이 화면을 토대 삼아 제기된 이의를 반영해 기록을 수정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비디오 판독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인데, 공식기록적으로는 화면을 근거로 각종 기록판정 및 기록정정을 하는 것에 대한 규정이나 지침이 아직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경우, 판정관들의 판정방식은 육안에 의한 판정을 고수하고 있고 또 그것을 따라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야구는 과학이 아닌 사람이 하는 행위 예술이라는 점, 스포츠는 스포츠다워야 한다는 점에 비중을 둔 사고의 결과다.
하지만 과거에는 그냥 묻혀갈 수도 있었던 많은 부분들이 지금은 디지털 매체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쉽게 말해 숨을 곳이 없다. 크고 작은 잘못과 실수들이 그대로 표출된다. 세상은 이미 첨단화되어 가고 팬들은 첨단화된 시야를 통해 야구를 바라보고 있다. 결코 기계를 이길 수 없는 인간의 육안을 통해 판정관들은 애를 쓰지만 수시로 한계에 부딪친다.
과거로부터 시행되어 오고 있는 아날로그적인 전통의 판정 방식에 대한 디지털 시대의 도전과 요구를 더 이상 외면할 수만은 없는 시대를 판정관들은 살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홈런판정에 비디오 판독을 도입 한데 이어 파울과 페어볼, 노 바운드와 원 바운드 포구의 구별에까지도 비디오 판독 시행여부를 놓고 구체적인 검토에 이미 들어갔다는 후문이다.
역사는 바로 쓰여져야 하기에 판정관들은 바른 역사를 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지만 세상은 최선과 노력 이상의 문명을 요구하고 있다. 스포츠가 주는 인간미를 지켜가면서 한편으론 바른 역사를 써내려 가야 한다는 올바른 역사기술과 건전한 스포츠관 사이에서 판정관들의 고민은 점점 깊어가고 있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