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농사가 달려 있는 중요한 고비라고 할 만하다. 결과에 따라 죽음의 일정이 될 수도, 희망의 일정이 될 수도 있다.
2위 자리를 탈환한 SK는 22일 잠실 두산전을 시작으로 8연전이 예정되어 있다. 상대팀도 만만치 않다. 22일과 23일에는 2위 싸움의 경쟁자인 두산과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을 벌인다. 24일부터 25일에 걸쳐서는 ‘9.12 사태’의 상대팀이었던 LG와 만난다. 26일에는 목동에서 넥센, 27일에는 문학에서 한화를 각각 상대하고 곧바로 광주로 이동해 KIA와 2경기를 치른다. 올 시즌 들어 가장 호흡이 긴 일정이다. 이만수 SK 감독도 “어려운 상황이다. 선수들도 이런 경험은 많지 않다”고 걱정했다.
휴식일이 없고 이동이 잦다는 것은 선수단 입장에서 달갑지 않다. 로봇이 아닌 이상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벤치의 머리는 더 아프다. 선수단을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때로는 선택과 집중을 택해야 할 때도 온다. 이 감독은 “매 경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하면서도 “8연전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융통성은 필요하다”며 전략 구상에 고심임을 넌지시 드러냈다.

하지만 피할 길은 없다. 더군다나 2위 자리를 놓고 갈 길이 바쁜 SK다. 롯데와 두산과의 승차는 1.5경기에 불과하다. 언제든지 추격을 허용할 수 있는 사정거리 안에 있다. 이에 SK는 내심 5승 이상을 거둬 2위 자리를 굳힌다는 심산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풀어야 할 몇 가지 숙제가 있다.
▲ 구멍난 선발, 김광현은 돌아올까?
SK는 8연전의 첫 경기인 22일 잠실 두산전에 우완 채병룡을 선발로 예고했다. 정해진 수순이다. 그러나 23일부터 나설 선발투수들은 미지수다. 정상적인 로테이션이라면 외국인 투수 부시의 차례지만 후반기 들어 부진하다는 게 걸린다. 게다가 문학구장이 아닌 다른 경기장만 가면 고개를 숙였던 부시다.
때문에 부시를 중간계투나 다음주 홈경기로 돌리고 18일 선발로 나섰던 송은범이 4일을 쉬고 등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윤희상이 곧바로 24일 투입되고 두 선수는 8연전의 마지막 일정인 KIA전에 한 번씩 더 등판할 수 있다. 이만수 감독은 “긴 일정이라 투수 운영 전략도 새롭게 짜야 한다. 성준 코치와 다시 구상할 것”이라고 가능성을 열어 놨다.
주중 사직 롯데전에서 나란히 승리를 따낸 송은범과 윤희상은 현재 SK에서 가장 믿을 만한 투수들이다. 한 번이라도 더 투입시켜야 팀으로서는 이득이다. 하지만 두 투수가 8연전 모두를 책임질 수는 없다. 그래서 김광현이라는 이름 석 자가 눈에 밟힌다. 보름 가까이 꽁꽁 숨어 있는 김광현이 징검다리 역할을 해준다면 SK의 선발 로테이션은 숨통이 트일 수 있다.
김광현은 지난 9월 7일 광주 KIA전에 선발 등판했으나 2⅓이닝 동안 9피안타(1피홈런) 7실점하며 무너졌다. 구위와 몸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다고 판단한 SK는 그 후 김광현을 단 한 번도 등판시키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선발 로테이션 한 자리가 구멍 난 만큼 적절한 시기에 김광현을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 김광현의 투구 내용은 팀의 포스트시즌 계산에도 반영될 전망이다. 오랜 기간 심신을 가다듬은 효과를 보여줘야 한다.

▲ 박희수-정우람, 아낄 수 있을까?
불펜도 고심거리다. 선발투수들은 적어도 4일을 쉬며 다음 경기에 대비할 수 있다. 그러나 불펜은 그만한 여유가 없다. 특히 필승조가 그렇다. 필승조가 투입된다는 것은 팀으로서는 좋은 상황이지만 SK는 자원이 풍부하지 않다. 박희수와 정우람 정도가 붙박이 필승조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많은 경기에 나서 체력적으로 지쳐있다. 팀에서도 특별관리대상이다.
최근 SK는 넉넉한 점수차로 이기는 상황이 많지 않았다. 이기는 경기는 대부분 박빙이었다. SK는 9월 들어 7승4패1무를 기록했는데 박희수는 8경기, 정우람은 6경기에 나섰다. 지금까지는 중간중간 휴식일이 있어 피로도가 덜했지만 8연전 일정에서는 숨을 곳이 없다. 처음부터 오버페이스를 하다가 시즌 막판 탈이 날 위험성도 생각해야 한다.
때문에 다른 불펜 투수들이 두 선수의 몫을 나눠들 필요가 있다. 최영필 박정배 이재영 등 베테랑 선수들의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는 8연전이다. 최영필은 9월 5경기에서 6⅔이닝 동안 무자책점 행진이고 박정배는 5경기에서 2승 평균자책점 2.45로 안정된 모습이다. 아직 엄정욱의 복귀 시점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서서히 컨디션을 끌어 올리고 있는 이재영도 기대주다.
▲ 정근우, 공격의 활로를 열어라
최정은 9월 들어 다시 장타를 터뜨리고 있다. 이호준의 방망이도 꾸준하다. 이재원 모창민 등의 가세로 대타 요원 역시 풍부해졌다. 승부처에서 꺼내들 수 있는 카드도 많다. 문제는 이 선수들 앞에 주자가 나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결국 SK 공격의 선봉장인 정근우를 비롯, 테이블세터가 활발하게 밥상을 차려줘야 한다.
정근우는 데뷔 시즌인 2005년을 제외하면 최악의 성적을 내고 있다. 타율 2할6푼6리, 도루 21개는 정근우와는 어울리지 않는 성적이다. 그러나 9월 들어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9월 12경기에서 3할5푼3리에 4개의 도루를 기록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정근우가 안타를 치지 못한 2경기에서 SK는 모두 졌다. 그만큼 팀 공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정근우가 살아나가면 SK 특유의 작전수행능력도 빛을 발할 수 있다. 뛰는 야구가 가능해지고 여러 가지 작전이 나올 수 있다. 즉 최정이나 이호준과 같은 거포들의 한 방이 아니더라도 점수를 짜낼 수 있다는 뜻이다. 8연전 내내 장타가 나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근우의 활약상은 SK의 8연전 성적과 직결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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