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트의 효용성에 대한 논의는 야구에 번트가 등장한 이후 계속되고 있다. 스코어 차이, 그라운드, 상대투수, 타순 등 여러 변수가 존재하지만 번트는 득점확률을 높여주는 대신 기대득점은 낮춘다는 잠정적인 결론이 나온 상황이다. 즉 1점이 필요할 때는 번트가, 그 이상의 다득점이 필요할 때는 타자의 타격에 맡기는 쪽이 낫다는 게 데이터 상으로 나타나 있다.
타자들이 열이면 열 안타를 쳐 준다면 번트는 필요가 없겠지만 야구는 확률 싸움이기에 점수가 필요할 때엔 훌륭한 작전이 될 수 있다. 다만 과도한 번트는 타자들의 공격적인 성향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오히려 대량득점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아웃카운트 하나를 소비하면서 주자의 진루를 결정하는 '고육지책'이 번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번트 작전을 적시적소에 활용하는 건 감독의 역할이다.
프로야구 감독들 가운데 가장 번트작전을 즐겨썼던 감독은 김재박이다. 김 전 감독은 현대 지휘봉을 잡았던 2006년 무려 154개의 희생번트를 성공 시켰는데 126경기를 치르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경기당 1.2개의 번트를 한 셈이다. 당시 현대 팬들은 경기장을 찾으면 하루에 한 개의 번트를 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또한 김성근 감독 역시 번트작전을 즐겨 사용했다. 연간 번트 2위인 2010년과 2011년 147개는 모두 김 감독이 SK를 이끌던 시절 나온 기록이다.

번트가 많은 팀의 특징은 강력한 투수력, 그리고 상대적으로 약한 타격이다. 점수가 잘 안 나고, 또한 점수가 한 점이라도 나면 투수력의 힘으로 승리를 거둘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에 자주 번트를 시도하는 것. 김재박 감독이나 김성근 감독 모두 투수력이 강한 팀을 이끌었다.
올해는 KIA 선동렬 감독이 가장 많은 번트를 시도하고 있다. 22일 현재 KIA는 129개의 팀 희생번트를 기록, 이 부문 2위인 SK(107개)보다 20개 이상 많은 회수를 기록 중이다. KIA는 강력한 선발진을 갖췄지만 주포들의 잇따른 부상으로 타격이 약화된 상황. 팀 전력과 세밀한 야구를 즐겨하는 선 감독의 성향이 합쳐져 KIA는 팀 번트 1위라는 기록을 보유하게 됐다.
22일 목동 넥센전에서 KIA는 무려 3번이나 번트작전을 시도했다. 3회 무사 1루, 5회 무사 2루, 6회 무사 2루에서 각각 번트가 나왔다. 이 가운데 3회와 5회는 득점에 실패했고 6회는 폭투로 주자가 홈을 밟았다. 그러나 6회 희생번트 이후 폭투 2번과 볼넷 3개가 잇달아 나와 번트가 없었더라도 득점이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오히려 제구가 흔들리던 김영민을 도와준 격이 됐다. 결국 KIA는 넥센에 4-5로 역전패를 당해 4연패 늪에 빠졌다.
번트는 1승, 그리고 한 점이 급할 때 유용한 작전이다. 하지만 11경기를 남겨둔 KIA는 현재 공동 3위 롯데와 두산에 7경기가 뒤져있어 사실상 4강 진출이 좌절됐다. 물론 프로야구에서 지상과제는 승리지만 지금은 선수들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과감한 강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렇지만 KIA의 '번트 중시'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시즌 막판 감독이 교체된 한화와 넥센은 대행 체제로 잔여시즌을 치르고 있다. 이들 두 대행이 공통적으로 한 말은 "번트를 줄이고 선수들에게 맡기겠다"는 것. 실제로 두 팀은 번트를 자제하고 강공작전을 즐겨 사용한다. 그리고 직접적인 연관은 없겠지만 한화는 한용덕 대행체제 이후 12승 6패, 넥센은 김성갑 대행체제 후 4승 1패로 상승세다.
물론 한화와 넥센의 약진은 번트를 줄였기 때문이라고 보기 힘들다. 여러 복합적인 원인이 결합돼 현재의 성적을 내고 있다. 또한 번트작전은 여전히 야구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하지만 이제는 올해가 아닌 내년을 준비해야 하는 KIA가 이들 두 팀에서 배울 점도 분명히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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