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마저 사라지는 듯 했던 ‘선발야구’의 꿈이 이제야 실현되는 분위기다. 선발투수들의 맹활약 속에 2위를 향한 SK의 발걸음도 가벼워지고 있다.
SK는 지난주 4경기를 모두 이겼다. 상대를 생각하면 기쁨은 두 배다. 18일과 19일에는 롯데에 2연승하며 2위 자리를 탈환했다. 주말 2연전에서는 자신들을 사정권 안에서 추격하던 두산을 떼어냈다. 2위 경쟁자들과의 4연전을 싹쓸이한 SK는 3위 롯데와의 승차를 2.5경기로 벌리며 2위 굳히기에 들어갔다.
4연승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밑바탕이 됐다. 탄탄한 수비, 안정적인 뒷문, 고비 때마다 점수를 짜낸 타자들의 집중력이 어우러졌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선발투수들의 호투였다. 4경기에 등판한 세 명의 선발투수(송은범 윤희상 채병룡)는 총 27⅓이닝을 3실점으로 틀어막으며 승리를 향한 구름판을 놨다. 특히 송은범은 18일 사직 롯데전과 23일 잠실 두산전 모두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며 최고의 한 주를 보냈다.

사실상 시즌 들어 처음으로 선발야구의 덕을 본 시기이기도 했다. SK는 올 시즌 선발투수들의 연이은 부상으로 고전했다. 좌·우 에이스인 김광현과 송은범은 부상 후 재활로 시즌 출발이 늦었다. 복귀 후에도 부상이 재발해 한 번씩 2군을 경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을 대신해 에이스 역할을 하던 외국인 투수 마리오도 무릎 부상으로 두 달 넘게 사라졌다.
시즌 초반에는 또 다른 외국인 투수 로페즈의 조기 퇴출이라는 악재도 있었다. 새로운 외국인 선수 부시는 갈수록 시들하다. 규정이닝을 채운 선수가 윤희상 밖에 없다는 것은 그만큼 SK의 선발진이 꾸준하게 기능하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이는 불펜의 과부하로 이어졌다. “선발투수가 되도록 오랜 이닝을 버티는” 야구를 추구하던 이만수 SK 감독의 구상도 완전히 어그러졌다.
그러나 이제는 희망이 보인다. 중심에는 송은범이 있다. 송은범은 4월부터 8월까지 13번의 선발 등판에서 단 3번의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3자책점 이하)에 그쳤다. 이닝소화능력에서 합격점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9월 4경기 만에 3번의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며 3승을 거뒀다. 소집해제 후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는 채병룡도 기대주다. 이만수 감독은 “많은 이닝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라며 기대를 숨기지 않고 있다.
마운드의 버팀목인 윤희상은 여전히 꾸준하다. 9월 들어서도 힘이 떨어진 기색이 없다. 기대를 걸 만한 부분도 있다. 김광현과 마리오의 복귀다. 두 선수는 23일 잠실 두산전을 앞두고 나란히 불펜피칭을 소화했다. 9월 7일 광주 KIA전 이후 등판이 없는 김광현은 보름 넘게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많이 좋아졌다”는 판단을 내린 코칭스태프는 25일 문학 LG전에 김광현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마리오도 1~2차례 불펜 피칭 후 원래 자리인 선발로 돌려보낸다는 구상이다. 마리오는 부상으로 조기 강판된 2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14경기에서 7번이나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다. 김광현과 마리오까지 제 모습을 찾는다면 SK의 선발진은 시즌 전 구상과 같아진다. 불펜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경기를 끌어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뒤늦게 찾아온 꿈이지만 아직 늦지 않아 반가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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