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누가 더 잘 뛰나”라는 화제로 싸우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옛말이 됐다. 리그의 ‘발야구’ 트렌드를 선도했던 SK와 두산의 기동력이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두 팀은 뛰는 야구의 대명사들이었다. 2008년 두산의 팀 도루는 189개, SK는 170개였다. 신나게 뛰어다니는 두 팀은 상대 배터리에게 커다란 스트레스였다. 이에 자극 받은 다른 팀들도 기동력 육성에 나설 정도였다. 그러나 올 시즌은 사정이 달라졌다. 23일 현재 두산은 108개의 도루로 리그 6위, SK는 90개로 리그 최하위다. 도루가 팀 기동력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예전만 못하다는 게 중론이다.
22일과 23일 열린 두 팀의 맞대결에서도 이런 양상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두 경기에서 최정(SK)이 도루 하나를 성공한 것이 전부였다. 첫 경기에서는 조동화(SK)와 이종욱(두산)이라는 두 팀의 대표주자들이 2루 베이스를 훔치려다 나란히 잡혔다. 성공률은 둘째치더라도 양 팀 통틀어 도루 시도는 세 번뿐이었다. “서로의 발을 묶어놓는 것이 관건”이라는 예상이 가볍지 않았던 예전과는 딴판이다.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 스타일의 변화, 도루 감소 불렀다
SK는 지난 5년간 평균 150.6개의 도루를 기록했다. 리그 어떤 팀보다도 많은 수치다. 그러나 지난해 105개를 기록하며 전체 6위로 처지더니 올 시즌은 세 자릿수 돌파 여부마저 불투명하다. 반대로 실패는 늘어났다. 64번의 도루 실패는 리그 최다고 도루 성공률 58.4%는 SK의 기록이라고 믿기 힘들다. 불과 2년 전인 2010년 SK의 도루 성공률은 70%였다.
표면적인 원인은 정근우 박재상 등 뛸 수 있는 선수들이 부진하다는 것이다. 붙박이 톱타자 정근우(21개)는 올 시즌 타율 2할6푼6리, 출루율 3할3푼6리에 그치고 있다. 많이 나가지 못하다보니 그만큼 도루의 기회도 줄어든다. 정근우와 함께 테이블세터를 이뤘던 박재상은 더 심각하다. 타율 2할1푼2리에 출루율(.309)은 3할을 겨우 웃돈다. 2009년 33개의 도루를 기록했던 박재상의 올 시즌 도루는 단 5개다.
달라진 벤치의 작전 스타일도 도루 감소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SK는 그간 작전과 기동력을 중시했다. 다른 팀에 비해 확실한 거포가 부족했던 팀 사정을 감안한 고육지책의 성격도 있었다. 하지만 올 시즌은 최정 이호준이라는 확실한 타자들이 중심타선에 자리하고 있다. 때문에 이만수 SK 감독은 도루라는 모험보다는 희생번트라는 ‘안전자산’을 선호하고 있다. 올 시즌 SK의 희생번트는 110개로 KIA(130개)에 이어 리그 2위다.
시도 횟수를 보면 이는 어느 정도 드러난다. 넥센이 167개의 도루를 성공하는 동안 SK의 전체 도루 시도는 154회에 머무르고 있다. 대신 주로 2번 자리에 위치한 박재상은 15번, 임훈은 14번 희생번트를 댔다. 김강민 김성현 정근우(이상 11회)도 희생번트 비율이 높았고 9월 돌아온 조동화는 14경기에서 벌써 4번의 희생번트를 기록했다. 정근우가 살아나고 조동화가 돌아왔어도 팀 도루의 급격한 증가는 없을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 뛸 선수들이 없어 고민
‘육상부’라는 애칭이 달려 있었던 두산은 여전히 뛸 수 있는 선수들이 많다. 이종욱 정수빈 오재원 고영민 등은 리그에서도 정상급 도루 능력을 가진 주자들이다. 김진욱 두산 감독도 도루를 장려하는 편이다. 기회만 있으면 얼마든지 베이스를 훔칠 수 있다. 문제는 그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진과 부상이 주자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모양새다.
리그의 대표적인 도루왕인 이종욱은 올 시즌 타율이 2할3푼8리에 불과하다. 2006년 프로 데뷔 이래 가장 저조한 수치다. 올 시즌 75%의 준수한 도루 성공률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도루 개수가 21개밖에 되지 않는 이유다. 팀에서 유일하게 도루 부문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정수빈(24개)은 시즌 초반의 페이스가 뚝 끊겼다. 종아리 부상으로 8월 전체를 건너 뛴 것이 타격이었다. 복귀 후에도 자신의 흐름을 찾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지난해 46개의 도루로 타이틀을 차지했던 오재원(14개)도 부상으로 고전한 끝에 69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87.5%의 높은 도루 성공률이 아쉽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두산 육상부의 선두주자 중 하나였던 고영민(7개)도 잦은 부상으로 58경기 출장에 그쳤다. 뛸 능력은 갖추고 있는데 정작 판이 깔리지 않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주자들의 묶인 발은 올 시즌 두산의 빈공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두산은 올 시즌 117개의 병살타를 쳤다. 리그에서 가장 많다. 당장 두산은 23일 잠실 SK전에서 3번의 병살타로 자멸했다. 예전에는 발을 이용해 병살 상황을 피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지만 올 시즌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선수들의 잦은 부상, 민병헌의 입대 등으로 대주자 요원들이 줄어든 것도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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