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는 두산의 최고 타자이다. 현재 프로야구단에서 활약중인 야수들 중에서도 최고 수준에 속한다.
그의 별명은 ‘타격기계’다. 그 동안 어떤 구질의 공이 오든 마치 기계처럼 툭툭 때려내고야 마는 그의 모습은 정말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만들었다. 김현수는 특유의 큰 체구와 순진한 얼굴로 타석에 등장해서는 제 스윙을 부드럽게 척척 해냈다. 그 모습은 그가 마치 타격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는 ‘기계’일 수 도 있겠다는 의심을 하게 만들었다. 그것도 신고선수 신분으로 두산에 입단해서 보여준 이 같은 활약상은 그가 무엇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마인드를 갖추었을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타격기계’라는 별명이 더 와 닿았다.
하지만 정작 두산이 가을 잔치에 초대되었을 때마다, 김현수의 기계 같은 모습이 더욱 필요해졌을 때마다, 그의 방망이는 늘 침묵했다. 가을 잔치에서 그의 그런 모습은 팀에는 매우 치명적이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김현수 자신에게도 상처가 됐는지 2008년 가을 잔치가 끝난 후에는 ‘잠적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덕분에 자신이 기계가 아니라 인간임을 입증할 수 있기도 했다.

그는 데뷔 이래 꾸준히 3할을 기록해 오기는 했지만, 2010년부터 사실 그의 활약은 팬들의 기대치를 너무 높여놓은 탓인지 아쉽기만 했다. 심지어 올 8월부터는 2할대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최준석, 김동주가 전과 같이 규정타석을 채워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팀 타선의 중심을 잡아야만 하는 부담감이 그에게 더욱 가중되었을 것이다.
팀에서 자신을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이 언제인지 안다는 것은 김현수의 중요한 장점이다. 김현수는 팀이 현재 유리한 순위로 가을잔치에 가야 하는 상황에서 그의 임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또 가을잔치에서 그가 타선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항상 장점과 단점이 동전의 양면과 같이 맞닿아 있듯이, 김현수의 이런 민감성과 책임감은 그의 몸을 더욱 무겁게 만들기도 한다. 게다가 가을잔치에서 항상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을 했던 자신의 과거도 극복해야 할 숙제로 가지고 있다. 3할타자라는 부담도 내려놓고, 팀의 중심 타자라는 부담도 내려놓고, 포스트시즌에서 좋은 활약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내려놓아야 한다. 자신이 그 동안 쌓아놓은 기록의 굴레, 명성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는 최고수준의 타자다. 그가 최고 타자임을 프로무대에서 몇 년간 꾸준히 증명해왔다. 그가 앞으로 해야 하는 일은 그가 누구인지 증명하는 일이 아니다. 지난해의 김현수와 올해의 김현수가 다를 수 있다. 아니 더 그전의 김현수가 현재의 김현수와는 다를 수 있다. 꾸준하다는 것은 변화한다는 것과 상충되는 개념이 아니다. 꾸준히 성장할 수 있고, 꾸준히 변화할 수 있다. 프로선수라면 성장을 위해서 꾸준히 새로운 시도를 하며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 정체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 동안 김현수는 매 시즌 새로운 목표를 세우며 그의 과거로부터 배우고 미래를 실험해왔다. 2008년 시즌을 앞두고는 전경기 출장을 목표로 삼았고, 2009년 시즌을 맞이하면서는 체격에 맞는 거포가 되고자 했고, 2010년 그의 목표는 최다 안타를 계속 때려내는 것이었고, 2011년에는 4번타자로서 입지를 굳히는 것이었으며, 2012년 그의 목표는 정확한 타격을 해내는 것이었다.
그가 현재의 성적으로도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성실하게 훈련에 임할 수 있는 것도 그가 현재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매일의 새로운 도전에 대해 기대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야구인들에게는 김현수가 올해 또 어떤 기록을 낼 것인가에 집중해서 얻는 재미보다, 그가 포스트 시즌까지 어떠한 경기를 펼쳐내며 성장해 갈지 지켜보는 것이 더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김현수는 지금보다 내일이 항상 더 기대되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고려대 학생상담 센터 상담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