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승리‘ 송창식이 다시 펴는 날개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2.09.26 07: 20

버거씨병(Buerger's disease)-혈관 폐쇄로 인해 사지 말단이 괴사(세포나 조직의 일부가 죽음) 상태에 빠지거나, 심할 경우 절단까지 초래할 수 있는 혈관 질환.
8년 전 그는 약관의 나이에 팀 선발진 한 축으로 우뚝 섰던 샛별이었다. 그러나 부상에 이어 희귀병이 그를 덮쳤고 결국 입단 후 4년 만에 은퇴 수순을 밟아야 했다. 그러나 모교 후배들을 가르치면서 야구에 대한 갈증을 재차 느꼈고 이제는 당당한 팀의 주축 계투로 우뚝 섰다. 한화 이글스 9년차 우완 송창식(27)의 야구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올 시즌 송창식은 43경기 4승 3패 1세이브 11홀드 평균자책점 2.96(25일 현재)을 기록하며 시즌 막판 최하위 한화의 돌풍에 기여하고 있다. 시즌 초반 난조는 옥의 티였으나 7월서부터 송창식은 어느새 팀에 없어서는 안 될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상대적으로 얇은 선수층으로 고심하고 있는 한화에서 송창식의 존재는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다. 특히 4년 전 안타깝게 은퇴했다가 다시 구단의 문을 두드린 선수가 또 하나의 인간 승리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더욱 팬들의 박수를 받기 충분하다.

2004년 세광고를 졸업하고 2차 1라운드로 연고팀 한화 유니폼을 입은 송창식은 그해 한화의 1차지명 김창훈(두산)과 함께 이글스 마운드 미래를 이끌어 갈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다. 데뷔 첫 해 송창식은 곧바로 규정이닝을 돌파하며(140⅓이닝) 8승 7패 평균자책점 5.13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팔꿈치 부상으로 고전하던 송창식은 재기를 노리던 중 버거씨병 진단까지 받으며 야구 인생은 둘째 치고 일상생활에서도 위기를 맞았다. 1990년대 중후반 한화-쌍방울에서 활약하던 내야수 이민호도 이 버거씨병 진단 후 결국 이른 은퇴를 선택했던 바 있다.
이민호의 조기 은퇴처럼 송창식도 2008시즌 아쉬운 은퇴를 선택했다. 그리고 은퇴 후 1년 간 모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다 연습경기에도 재미삼아 나섰던 송창식. 그런데 자신이 던진 공이 손쉽게 145km까지 찍히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면서 재기에 대한 강한 열망을 비출 수 있게 되었다. 1년 간의 외유 후 송창식은 2010년 초 한화의 문을 두드려 다시 프로야구 선수가 되었다.
복귀 후 2시즌 동안 1군 무대는 밟았으나 혁혁한 성과는 거두지 못했던 송창식은 올 시즌 팀의 필승 계투 요원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송창식의 후반기 성적은 25경기 2승 1패 1세이브 10홀드 평균자책점 1.89 피안타율 1할2푼6리로 특급 수준이다. 신인 시절 보여줬던 140km대 후반의 직구는 물론 한 구종을 갖고도 완급조절하는 노련미까지 물씬 풍기고 있다. 25일 잠실 두산전에서도 송창식은 1⅔이닝 퍼펙트 피칭으로 선발 류현진-마무리 박정진을 잇는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한용덕 감독대행은 송창식의 최근 투구에 대해 “풀카운트에서 우격다짐식 빠른 직구가 아니라 힘을 뺀 느린 직구를 던져 상대의 타이밍을 흐트러뜨려 삼진을 잡아내더라. 농담 삼아 ‘하산해도 될’ 정도”라며 대견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한때 사지 말단에 힘을 줄 수 없는 질병을 앓았던 투수가 힘을 조절해 다양한 직구를 던지고 있다는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25일 잠실 두산전을 앞두고 만난 송창식은 한 대행의 칭찬에 쑥스러워하면서 “8년 간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느낀 것들을 지금 마운드에서 던져보고 있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데뷔 시즌 잠깐의 주목과 부상, 질병. 그리고 은퇴에 이은 선수 재등록까지 많은 풍파를 거친 뒤 던지는, 느리지만 세월의 무게가 묻어있어 웬만한 광속구 못지 않게 묵직한 공이었다.
“모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다보니 야구에 대한 시야가 넓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하는 입장에서 가르치는 입장으로 보다 보니 다른 시각에서 야구를 볼 수 있었고 그만큼 다시 뛰고 싶다는 생각도 커졌습니다”. 송창식이 테스트를 받던 당시 한 구단 관계자는 “해보려는 의욕이 뜨거운 친구라 무형적으로라도 힘을 주고 싶다”라며 꼭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잘 해왔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당장 올 시즌만이 아니라 내년, 그리고 내후년도 중요하니까요. 앞으로도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터널을 뚫고 팀의 필수 요소로 거듭난 올 시즌 자신의 활약을 자평해달라는 질문에 송창식은 100점 만점에 80점을 주었다. “시즌 초반에 제대로 못 해서 20점은 까야 됩니다”.
일상생활조차 힘들었던 사람이 프로야구 선수가 되었다는 자체로도 ‘인간 승리’로 주목을 받기 충분하다. 그러나 송창식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단순한 연민의 감정으로 이어지지 않길 바라며 자기 재능을 절차탁마했고 그 결과 이제는 자타가 공인하는 ‘좋은 계투’가 되었다. 사람에게 닥치는 고난이 불가능이라는 끊어진 길이 아니라 어떻게든 넘을 수 있는 벽이라는 점. 한화 필승 계투 송창식이 올 시즌 이를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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