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희(23, 알 사일리아)가 드라마에 나올법한 행운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 6월부터 지금까지 약 3달간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6월 7일 화성에서 열린 시리아와 올림픽 대표팀의 평가전. 홍명보호 수비의 핵인 홍정호(제주)가 부상으로 낙마한 가운데 김기희가 시험 무대에 올랐다.
명운이 걸린 경기였다. 활약 여하에 따라 런던행 비행기에 오를 발판을 다지느냐 올림픽의 꿈에서 멀어지느냐 하는 생사의 기로에 놓였다. 그 중요한 경기에서 김기희는 보란듯이 머리로만 2골을 터뜨리며 대표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렇게 런던행이 가까워지는 듯했다. 하지만 올림픽에 나설 영광의 18인의 이름들 속에 김기희의 이름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올림픽을 코앞으로 앞두고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중앙 수비에서 김영권과 짝을 맞출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장현수가 연습 경기에서 왼쪽 무릎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그리고 김기희는 홍명보 감독의 부름을 받으며 그 자리를 꿰찼다.
영광의 런던 땅을 밟았지만 쉽사리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했다. 중앙 수비를 책임진 김영권-황석호 조합은 굳건했다. 조별리그 3경기 동안 상대 공격을 1실점으로 틀어막으며 한국을 8강으로 이끌었다.
8강전(영국)과 4강전(브라질)서도 이들의 활약은 계속됐다. 결국 김기희는 일본과 3-4위전이 열리기 전까지 홍명보호의 18인 중 유일하게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본선 경기에서 단 1초라도 뛰지 않은 선수는 동메달을 따더라도 병역특례에서 제외된다는 병역법에 따라 일본에 승리를 거두더라도 자칫 병역 면제의 혜택을 받지 못할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던 것이다.
하지만 하늘은 끝내 김기희를 외면하지 않았다. 한국이 1-0으로 앞서며 살얼음 승부를 펼치던 후반 12분 구자철의 추가골이 터졌다. 김기희 카드를 만지작거리던 홍명보 감독은 승기를 잡자 여지없이 칼을 빼들었다. 김기희는 그렇게 후반 44분 구자철 대신 영광의 그라운드 위에 올라섰다. 동메달의 영광과 병역면제의 혜택을 동시에 거머쥐는 순간이었다. 올림픽 포상금은 덤이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내년 6월 30일까지 9개월간 카타르 클럽인 알 사일리아로 임대를 떠나는 것이 결정됐다. 선수들이 한 번은 꿈꾼다는 중동행이 이뤄진 것이다. 김기희는 한국에선 쉽게 만질 수 없는 돈에 구단으로부터 집과 고급차를 제공받았다. 구체적인 액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원소속 구단인 대구에 막대한 자금도 안기며 영광스럽게 대구를 떠났다.
이 모든 것은 대구와 알 사일리아의 팀내 사정이 잘맞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알 사일리아는 올 시즌 카타르리그 2경기서 무득점에 그친 반면 5실점을 허용하며 2연패를 당하고 있었다.
대구의 중앙 수비는 주전과 비주전의 기량 차이가 크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다. 올 시즌 수비의 핵인 주장 유경렬(21경기)과 김기희(17경기)가 각각 부상과 올림픽 차출로 자리를 비웠을 때 이지남(22경기)과 안재훈(7경기)이 이들의 역할을 완벽히 대신했다. 김기희가 빠진다 하더라도 올 시즌 남은 12경기를 무난히 소화할 수 있었다.
여기에 현재 승점 43점을 기록하며 강등권인 강원(25점)과 격차를 많이 벌려 놓은 대구의 모아시르 감독은 부담없이 용단을 내렸다. 올림픽 전부터 김기희를 눈여겨 봤던 알 사일리아와 대구의 사정이 딱 맞아 떨어진 셈이다.
평생 요원한 일을 단 3개월 만에 그것도 롤러코스터와 같은 인생역전을 반복하며 행운의 사나이로 거듭났다. 김기희는 이제 새로운 무대인 카타르 리그에서의 성공 신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김기희는 지난 24일 메디컬테스트를 받고 바로 팀에 합류한 상태라 오는 29일 엘 야이시SC와 원정경기서 데뷔전을 치를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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