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초 가운데 용설란(龍舌蘭)이라는 게 있다. 잎이 용의 혀같이 생겼다 해서 이와 같은 이름이 붙은 용설란이 유명한 까닭은 100년에 한 번씩 꽃이 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부터다. 실제로 용설란은 100년은 아니더라도 심고 난 뒤 꽃이 피기까지 10여 년 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두산 베어스 우완 노경은(28)이 바로 '용설란'과 같은 투수다. 2003년 두산의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한지 올해로 10년차, 만년 유망주의 꼬리표를 떼고 선발진의 대들보로 자리잡았다. 중간계투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선발진에 자리잡은 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호투를 이어가며 이제는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가 됐다.
26일 잠실 한화전에서 노경은은 물오른 투구를 선보였다. 한화 타선을 맞아 9이닝동안 3피안타 1볼넷 9탈삼진 무실점으로 완벽에 가까운 투구를 했다. 경기 내내 특별한 위기조차 없었고 득점권에 주자가 나간 건 1회 단 한 명뿐이었다. 노경은은 직구 위주의 피칭을 펼쳤고 포크볼 보다는 슬라이더를 더 많이 사용했다. 여기에 느린 커브도 하나씩 섞어 타자들을 교란시켰다. 한화 타자들은 노경은의 묵직한 직구에다가 어떤 구종의 공이 들어올 지 예상하지 못하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 9월 노경은은 '언터쳐블'이라 부를 만하다. 등판한 4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거뒀고 단 1점도 허용하지 않았다. 특히 6일 잠실 넥센전에서 노경은은 9이닝 5피안타 무실점 호투로 생애 첫 완봉승을 따내는 기쁨을 누렸다. 이어 12일 목동 넥센전은 7이닝 무실점으로 승리를 따내더니 19일 광주 KIA전까지 8이닝 무실점으로 승을 거뒀다. 여기에 26일 경기까지 포함하면 노경은은 9월 4경기서 4연승, 평균자책점 '제로'를 기록하게 된다.
한화 타자들이 2루를 밟은 건 1회와 9회 단 두 번뿐이었다. 1사 후 오선진이 우중간 2루타를 치고 나갔지만 최진행이 포수 파울플라이, 김태균이 삼진을 당해 점수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후 5회까지 노경은은 4이닝동안 3자범퇴 행진을 벌였고, 6회 선두타자 박노민에 좌전안타를 맞았지만 하주석을 삼진으로 돌려세운 뒤 고동진에 병살을 유도했다.
최대 고비는 8회, 선두타자 김경언이 볼넷으로 걸어 나갔다. 그렇지만 '결자해지'라는 말 처럼 노경은은 대타 장성호를 삼진으로 잡아냈고 연경흠의 투수 앞 강습 땅볼타구를 직접 잽싸게 건져내 병살로 연결시켜 이닝을 마쳤다. 결국 노경은은 9회까지 책임지며 올 시즌 두 번째 완봉승을 완성했다. 지난 6일 잠실 넥센전에서 완봉을 거둔 지 불과 20일 만에 다시 위업을 달성한 것, 올해 한 명의 투수가 2번 완봉승을 거둔 건 노경은이 처음이다.
노경은의 호투에 힘입어 두산은 한화를 5-0으로 제압하고 2위 추격의 마지막 불씨를 살렸다. 10년을 기다려 꽃피운 노경은이 앞으로 10년동안 두산 마운드를 지켜줄 '에이스'가 될 수 있을까. 만약 가능하다면 2012년은 그 첫 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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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지형준 기자,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