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고 생각하는 대로 야구가 되지 않는 8년을 보냈던 투수. ‘만년 유망주’라는 꼬리표마저 떼어지던 순간 기적처럼 일어선 그는 어느새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확실히 자리를 굳혔다. 올 시즌 중후반 두산 베어스의 실질적인 에이스로 우뚝 선 노경은(28)이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이뤄지는 투구를 33이닝 째 이어가고 있다.
노경은은 지난 26일 잠실 한화전에 선발로 나서 9이닝 동안 3피안타(탈삼진 9개, 사사구 1개) 무실점으로 시즌 11승째를 자신의 데뷔 후이자 올 시즌 두 번째 완봉승으로 수확했다. 셋업맨으로 시즌을 출발했다가 6월부터 두산 선발 로테이션 한 축을 맡고 있는 노경은의 올 시즌 성적은 11승 6패 7홀드 평균자책점 2.58(3위, 27일 현재)로 뛰어나다.
또한 139⅓이닝으로 데뷔 첫 규정이닝 돌파를 확정지었고 탈삼진도 127개(5위)나 된다. 선발로서 노경은의 올 시즌 성적은 9승 4패 평균자책점 2.28인데다 9월 4경기를 모두 승리하며 33이닝 동안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았다. 최고 153km의 광속구를 던지면서도 투심, 포크볼, 슬라이더, 커브 등 다양한 구질을 두루 구사하는 데다 9월 33이닝 동안의 사사구 허용도 8개 밖에 되지 않는다. 9월 경기 내용만 보면 36이닝 연속 무실점 중인 서재응(KIA)과 함께 국내 최고 선발급 위력이다.

2003년 데뷔 후 줄곧, 최근까지도 제구난에 대한 지적을 받았던 노경은은 지난 시즌부터 자신이 던지고자 하는 구종과 코스를 들리지 않게 중얼거린 뒤 던지는 자신만의 방법을 채택했던 바 있다. 지난해 노경은은 전천후 계투로 뛰며 44경기 5승 2패 3세이브 3홀드 평균자책점 5.17을 기록했다. 기록은 평범해보이지만 이는 시즌 중반 연투로 인해 구위가 하락하며 난타를 당해 성적이 나빠진 감이 컸다.
“친구 전병두(SK)가 가르쳐 준 방법”이라며 운을 뗀 노경은은 “공을 던지기 전 내가 어떤 공을 어떻게 스트라이크 존에 넣을 것인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 뒤 던지니 내가 원하는 공을 던질 수 있게 되더라”라고 밝힌 바 있다. 한때 1군 마운드에 오르면 스트라이크 존과 동떨어진 코스로 공을 던지기 일쑤였던 노경은은 점차 자신이 ‘말하는 대로’ 야구를 하고 있다.
2년 전 방출 위기를 간신히 벗어났을 때 노경은은 “김진욱 2군 투수코치께서 내가 방황할 때 많이 다잡아주시고 혼내기도 하셨다. 언젠가 그 분께 꼭 은혜를 갚고 싶다”라고 한 바 있었다. 그 말이 있었던 2년 뒤 노경은은 어느새 주축 선발 투수가 되며 포스트시즌 진출이 가시화된 두산의 확실한 승리 카드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초보 감독인 김 감독이 맡은 지난해 5위팀. 그리고 최근 타격 침체를 겪고 있는 두산이 4위를 달리고 있는 데는 노경은의 공이 굉장히 크다.
이제는 실질적인 선발 에이스로 우뚝 선 노경은. 그는 오히려 자신이 팀에 없어서는 안 될 투수가 되자 겸허한 마음으로 다음 경기를 기다리고 또 현재를 보내고 있다. “시즌 막바지까지, 그리고 포스트시즌 들어서도 긴장감은 놓지 않겠다. 6이닝 이상, 그리고 가능한 최소 실점으로 상대를 막아내겠다”라는 노경은의 말은 33이닝 연속 무실점으로 현실화되는 중이다.
“엔트리에만 들었을 뿐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던 가을 야구에 나가보고 싶어요. 그래서 팀이 원하는 순간 원하는 활약을 펼쳐 팀 승리에 공헌하고 싶습니다”. 어느 순간 말하는 대로 모두 이뤄내고 있는 노경은. 비포장도로 같던 지난 8년을 뒤로 하고 주축 투수가 된 노경은은 다음 목표까지 수월하게 이뤄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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