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윤석민 좀 주면 안 되나”-“김혁민은 줘야 거래가 되지”.
지난 2월 초. 미국 애리조나 투산에 캠프를 차렸던 한대화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은 마침 휴식일을 틈 타 두산 베어스 캠프가 있는 피오리아시를 찾았다.
OB 시절 팀 동료였던 김진욱 감독과 반갑게 만나 인사한 한 감독은 환담 도중 특유의 유머러스한 어조로 “우리 윤석민 좀 주면 안 될까”라며 농 섞인 제안을 꺼냈다. 김 감독은 허허 웃었고 곁에 있던 구단 고위 관계자는 “김혁민 정도는 줘야 거래가 될 것”이라며 퇴짜를 놓았다. 그 윤석민(27)이 독수리 킬러가 된 동시에 팀의 새 4번 타자로 자리매김 중이다.

윤석민은 지난 26일 잠실 한화전에서 4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해 1회 선제 결승 1타점 중견수 방면 3루타를 때려내는 등 4타수 2안타 1타점으로 활약했다. 시즌 후반기부터 팀의 4번 타자로 나서며 출장 기회를 얻고 있는 윤석민은 올 시즌 101경기 2할9푼1리 9홈런 43타점(27일 현재)을 기록하며 커리어하이 시즌을 향해 달리고 있다. 올 시즌 윤석민의 한화전 성적은 18경기 3할2푼7리(52타수 17안타) 5홈런 14타점으로 뛰어나고 3연전 성적도 11타수 5안타(4할5푼5리)로 정확성이 돋보였다.
특히 한화가 올해 초까지 윤석민을 필요로 하며 트레이드 제안을 했음을 감안하면 더욱 재미있는 윤석민의 상대 성적이다. 2010시즌 중 주전 3루수였던 송광민이 갑작스레 군입대하고 복귀 계약을 놓고 한화가 수수방관하던 사이 이범호가 KIA로 깜짝 이적, 3루 고민을 앓던 한화는 지난 시즌부터 물밑으로 윤석민 영입을 위해 두산에 트레이드를 제안했다. 공격 면에서 김동주, 수비 면에서 이원석에 밀려 빛을 못 보고 있었으나 이미 2군 리그를 초토화한 타자인 만큼 한화는 윤석민을 굉장히 필요로 했다.
그러나 두산은 “우완 선발 유망주 유원상(LG), 김혁민이 아니면 거래는 없다”라는 방침을 고수했다. 두산 입장에서도 언제 찾아올 지 모르는 김동주의 노쇠화 시기를 대비해야 했고 이원석도 병역을 해결하지 않았던 만큼 윤석민을 잡고 있어야 했다. 한화에 건네 주더라도 이미 두산 팜에서 최고의 파괴력을 자랑하는 타자였던 만큼 두산은 부메랑 효과도 최소화할 만한 거물 투수 유망주로 트레이드 반대급부를 받길 바랐다. 결국 올해 초까지 이어졌던 몇 차례 트레이드 논의는 없던 일이 되었다.
다시 트레이드 불씨가 타오를 가능성은 거의 완벽하게 사라졌다. 한화에서도 유원상은 이미 지난 시즌 중반 팀을 떠났고 김혁민은 이제 팀의 당당한 우완 선발이다. 또한 두산에서도 김동주의 결장 공백을 메우고 있는 타자가 바로 윤석민인 만큼 그를 놓고 거래가 일어날 가능성은 한없이 0에 수렴한다.
기존 4번 타자였던 김동주가 두목곰의 파괴력을 회복했다면 윤석민은 다시 자리를 내줄 가능성이 크지만 현재 김동주의 2군 경기 성적은 2할3푼3리(30타수 7안타) 6타점. 2군에서 때려낸 7안타가 모두 단타라 예전 파괴력 넘치던 김동주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큰 경기 경험이 많은 김동주가 2군 경기를 초토화할 경우 포스트시즌에 1군 합류할 가능성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9월 4할3리(62타수 25안타) 3홈런 9타점을 기록 중인 윤석민의 4번 타자 출장 가능성이 좀 더 높은 편이다.
수년 전 윤석민은 자신을 향해 오지 않는 출장 기회라는 햇볕을 그리워하며 방황하기도 했다. 지난해만 해도 “동주 형 있는데 제가 여기서 자리가 있겠어요”라며 스스로 좌절했던 선수였다. 그 윤석민이 자신의 새 둥지가 될 뻔 했던 한화를 상대로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생애 첫 포스트시즌 중심 타선 출장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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