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망이로만 점수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글러브로도 점수를 벌 수 있다. 올 시즌 SK의 수비진이 이를 훌륭하고 증명하고 있다. 도무지 빈틈이 안 보인다.
SK는 가을이 찾아오자 상승세를 타고 있다. 9월 들어 가진 17경기에서 11승을 쓸어 담았다. 그 와중에 2위 자리를 탈환했고 경쟁자들과의 격차를 서서히 벌리고 있다. 당초 8연전 일정을 우려했지만 전혀 흔들림이 없다. 오히려 첫 5경기에서 4승1패로 치고 나갔다. 롯데와의 시즌 마지막 맞대결 이전에 플레이오프 직행 티켓을 거머쥘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호성적의 가장 큰 원동력은 자리를 잡은 선발진이다. 윤희상 홀로 외롭게 분투하던 선발진에 송은범 채병룡이 가세했고 이제는 김광현 마리오까지 돌아왔다. 최근 5경기에서 5이닝을 버티지 못한 선발투수는 하나도 없었다. 선발이 끌어주니 경기도 쉽게 풀리는 양상이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이런 마운드를 든든하게 지지하는 수비의 힘이다.

SK의 수비력은 자타공인 최강이다. 타 팀 사령탑들이 공개적으로 부러움을 표시할 정도다. 정근우 박진만은 수비력만 놓고 보면 국내 최고의 키스톤 콤비고 3루수 최정의 수비력은 일취월장해 최고 수준까지 성장했다. 박재상 김강민 조동화 임훈 등 외야수들도 기동력, 송구능력, 타구판단능력 등을 고루 갖춘 수비의 스페셜 리스트들이다.
올해도 균열의 조짐은 없다. SK는 올 시즌 124경기에서 58개만의 실책을 범했다. 8개 구단 중 가장 적은 수치고 최다 실책팀인 LG(93개)의 62% 수준이다. 야수들이 든든하다보니 투수들도 부담이 적다. “웬만한 타구는 모두 처리해줄 것”이라는 안정감은 투수들의 어깨를 가볍게 한다.
25일 문학 LG전과 26일 목동 넥센전에서도 SK의 수비는 빛을 발했다. 25일 7회에는 서동욱의 우전안타성 타구를 2루수 정근우가 다이빙 캐치로 잡아냈다. 7-4로 쫓긴 8회 1사 1,3루에서는 3루수 최정이 이병규의 직선타를 처리함과 동시에 전광석화와 같은 1루 송구로 더블 플레이를 완성시켰다. 26일에도 4회 최정의 더블 플레이, 6회 정근우의 다이빙 캐치 등 호수비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심지어 코칭스태프조차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이만수 SK 감독은 26일 목동 넥센전을 앞두고 “성준 투수코치가 ‘수비 때문에 투수들의 평균자책점이 내려간다’고 하더라. 그만큼 우리 선수들이 수비를 잘한다. 투수들이 안정적으로 던질 수 있는 여건이다”라고 하면서 “코치들도 우리가 수비 때문에 4강에 오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중계 플레이도 잘한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경배 수비코치는 아예 “경이로울 정도”라고 단언하면서 “내가 코치지만 가르칠 것이 없다”라고 했다. 정 코치가 생각하는 SK 수비진의 장점은 안정감이다. 정 코치는 “수비는 잡을 수 있는 것만 잘 잡아도 성공이다. 반대로 잡을 수 있는 것을 못 잡는 게 실책 아닌가. 우리는 그런 게 거의 없다. 그것이 다른 팀과의 차이”라고 분석했다.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호수비는 말 그대로 보너스다.
야수들의 수비력이 고르다는 것도 SK의 큰 자산이다. 정 코치는 “타격은 몰라도 수비력은 거의 차이가 없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누가 들어가든 수비에서는 제 몫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SK는 거의 매일 좌익수와 유격수 자리의 주인공이 바뀌고 있다. 그럼에도 수비는 기복이 없다. 이 내공이 있는 한 SK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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