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계절이다. 하지만 프로야구에서는 내용을 조금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하늘은 높고 비룡의 승수가 살찌는 계절이다.
2007년 이후 SK는 항상 9월에 강했다. 가장 못했던 때가 2010년의 11승6패2무(승률 0.579)였다. 2009년 14승1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포함해 나머지 네 시즌은 모두 6할 승률을 넘겼다. 올 시즌도 이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 9월 들어 12승5패1무(승률 0.706)로 8개 구단 중 가장 좋은 성적이다.
‘위태로운’ 3위로 9월을 시작했던 SK는 가을의 힘을 받으며 플레이오프 직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3위 두산과의 승차는 4경기로 벌어졌다. 4경기만 이기면 자력으로 2위를 확정짓는다. 기세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때문에 두산과 4위 롯데도 사실상 준플레이오프 대비에 들어가는 분위기다.

이처럼 경쟁자들을 떨어뜨린 SK의 무서운 막판 스퍼트에는 선발, 수비, 자신감, 심장이라는 네 박자가 있다. 그것도 엇박자 하나 없는 환상의 하모니다.
▲ 선발의 호투와 수비의 지원
SK는 올 시즌 규정이닝을 채운 선수가 윤희상 밖에 없다. 그 정도로 선발투수들이 시즌 내내 부상과 부진으로 고전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9월 들어 하나둘씩 정상 컨디션을 찾기 시작하더니 뒤늦게 선발진이 완성됐다. 가을 경험이 풍부한 송은범과 채병룡이 제 모습을 되찾았고 부상으로 고생했던 김광현과 마리오까지 가세했다. 부진한 부시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는 상황이다.
SK가 본격적으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9월 18일 사직 롯데전 이후 8경기를 보면 SK 선발진의 힘이 실감난다. SK는 8경기에서 7승1패를 기록했는데 7승 모두가 선발승이었다. 6번은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였고 6이닝을 소화하지 못한 경우는 딱 한 번이었다. 8경기에서 SK의 평균 실점은 1.88점에 불과했다.
이렇게 선발투수들이 호투하자 벤치의 마운드 운영이 편해졌다. 선발투수가 6~7이닝을 막고 8회 박희수, 9회 정우람이 나서는 패턴이 굳어졌다. 이 기간 중 SK는 경기당 평균 3.38명의 투수만을 투입했다. 체력을 아끼는 것은 물론 불펜 투수들이 각 상황에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이점까지 손에 넣었다.
마운드의 호투에는 탄탄한 수비도 한 몫을 거들었다. SK는 9월 18경기에서 총 12개의 실책을 범했다. 경기당 하나가 안 된다. 실책이 없었던 경기도 12경기나 됐다. 설사 실책이 나오더라도 경기에 큰 변수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비자책점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은 이를 어느 정도 증명하는 자료다. 호수비를 논하자면 끝도 없다.

▲ 자신감 상승, 미치는 선수들이 많다
김성갑 넥센 감독대행은 SK를 두고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선수들이 많다. 경험이 풍부하다”라고 칭찬했다.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전무후무한 성과가 남긴 유산이다. 실제 최근 SK의 덕아웃 분위기는 차분하면서도 은근한 자신감이 배어있다. 선수들 스스로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리는 가을에 강하다”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다른 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무형적 자산이다.
가을에 좋은 성적이 반복되다보니 일종의 ‘최면효과’가 있다는 말도 나온다. “가을에는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이 심리적인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이만수 SK 감독도 이 부분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수석코치 시절부터 선수들을 지켜본 이 감독은 “우리 선수들은 가을만 되면 몸이 가벼워진다.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웃었다.
흔히 말하는 ‘미친 선수’들이 매 경기 다르다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현재 SK 타선이 타 팀에 비교우위를 점할 수 있는 부분은 클린업트리오다. 최정 이호준 박정권으로 이어지는 SK의 중심타선은 9월에만 39타점을 합작했다. 전체 88득점의 44.3%다. 그런데 결승타의 영예는 의외의 선수가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9월 들어 SK는 임훈 최정 조동화가 각각 2번의 결승타를 쳤다. 이호준 이재원 박재상 정상호 김성현도 한 번씩 결승타를 기록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상·하위타선을 가리지 않고 터졌고 특정 선수에 대한 의존도도 크지 않았다. 그만큼 선수층이 고르고 승부처에서 긴장하지 않는 강심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이재원과 김성현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재원은 9월 15일 문학 KIA전에서 대타 만루홈런으로 팬들을 열광하게 했고 김성현은 9월 26일 목동 넥센전에서 올 시즌 최고투수인 나이트를 상대로 2타점 2루타를 터뜨리며 승기를 가져왔다. 주축 선수들이 침묵할 때 깜짝 스타가 등장한 것이다. 잘 되는 팀의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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