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새 스타의 키워드는 ‘대기만성’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2.09.29 07: 08

오랫동안 빛을 못 보고 2군에서 기량 연마에 힘썼던 선수들. 기본적으로 성실하고 착한 성품을 지닌 그들이 올 시즌 비로소 야구에 눈을 뜨며 타이틀 획득을 가시화하고 팀의 주축으로 우뚝 섰다. 이들의 올 시즌 성공은 아직 빛을 못 본 유망주들에게 커다란 동기부여가 되기 충분하다.
한 시즌 홀드 신기록(33홀드)을 세운 박희수(29, SK 와이번스)와 홈런-타점 부문 타이틀(31홈런-104타점)을 사실상 거머쥔 박병호(26, 넥센 히어로즈). 그리고 국내 투수 평균자책점 1위(2.58, 전체 3위)를 달리고 있는 노경은(28, 두산 베어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대기만성이다.
올 시즌 SK의 필승 계투 한 축으로 당당히 우뚝 선 박희수는 63경기 7승 1패 6세이브 33홀드 평균자책점 1.36으로 SK의 상위권 성적에 크게 기여 중이다. 지난해 7월 31일 LG에서 넥센으로 이적한 박병호는 전 경기 4번(127경기) 출격의 꾸준함 속 2할9푼2리 31홈런 104타점으로 확실한 위력을 비추고 있다. 지난 6월 계투에서 선발로 갑자기 전환한 노경은은 41경기 11승 6패 7홀드 평균자책점 2.58을 기록하며 시즌 전 투수진의 물음표가 가득했던 두산의 포스트시즌행 순항에 공헌 중이다.

특히 이들은 모두 1억 미만의 연봉을 받고 있는, 이전까지 스타 플레이어로 확실하게 위력을 비췄던 선수들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팬들의 성원을 받고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될 만한 극적 요소를 갖추고 있다. 한때는 단골 트레이드 카드였고 팀에서도 기대치를 버리며 방출 위기까지 몰렸던 선수들이 어느새 리그를 호령하는 주축 선수로 자리매김한 올 시즌이다. '리그 몬스터'들의 위력이 예년보다 떨어진다고 팬들이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 대신 고진감래가 무엇인지 직접 보여주는 성실한 '대기만성 스타'들이 있으니까.
▲ ‘단골 매물’ 박희수, 이제는 트레이드 불가
지난 시즌 중반에서야 1군에서 꾸준한 기회를 얻게 된 박희수는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타 팀에 제시되던 트레이드 카드였다. 2군에서는 이미 타자를 농락하는 실력을 갖췄으나 두꺼운 좌완 선수층으로 인해 지난해 전반기까지는 SK 1군에서 효용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밀렸던 박희수다.
전임 김성근 감독은 기본적으로 좋은 제구력을 갖춘 박희수가 타 팀에서는 확실한 가치를 지녔다는 판단 하에 타 팀과의 트레이드 협상 거래에 단골 매물로 올렸다. 2010시즌부터 지방 구단과의 거래에는 박희수의 이름이 먼저 올랐고 지난해 전반기까지만 하더라도 수도권 구단과의 트레이드 논의에서 박희수가 거론되었다. 그러나 지난 시즌 중반부터 박희수가 팀의 필수 계투가 되며 물밑 트레이드 협상은 없던 일이 되었다.
모 구단에서는 박희수의 달라진 구위를 보고 “접었던 트레이드 협상을 재개하면 안 되겠는가”라는 뒤늦은 요청을 하기도 했으나 성사될 리가 없었다. 오버스로 스타일의 팔 각도를 약간 낮추며 140km대 초반의 직구가 140km대 중후반으로 훨씬 묵직해졌다. 여기에 원래 좋았던 제구력이 확실하게 빛을 보며 올 시즌 난공불락 계투로 우뚝 섰다.
올 시즌 박희수의 연봉은 7000만원. 그나마도 지난해 활약으로 많이 오른 것이다. 올 시즌 활약을 통해 박희수는 1억대 연봉은 물론 2억원대 연봉도 노려볼 만한 대단한 위력을 선보였다. 돈의 가치를 차치하고 박희수는 팀이 필요한 순간 최대한 많은 시간을 대기하며 국내 최고 좌완 계투로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 갈피를 못 잡다가 홈런-타점 1위로 변신한 박병호
2005년 성남고를 졸업하고 LG의 1차 지명으로 입단했으나 잠재력만 인정받았을 뿐 1군 무대에서 확실한 실적은 올리지 못하다 7월 31일 선배 투수 심수창과 넥센으로 이적한 박병호는 전 소속팀은 물론 팬들의 기대까지 굉장히 옅어졌던 만년 유망주였다. LG 시절만 하더라도 박병호는 떨어지는 변화구에 고개를 숙이며 덕아웃으로 향하고 어느 순간 대수비, 대주자 요원으로 교체되어 남은 경기를 바라보거나 2군에 익숙했던 타자다.
이유는 있었다. 박병호의 LG 시절을 기억하는 한 야구 관계자는 “한때 팀 내 기대가 컸던 선수인 만큼 여러 사람이 박병호를 건드렸다”라고 밝혔다. 타격 코치가 어떤 타격폼을 제시하면 지나가던 누군가가 ‘그것 말고 이렇게 해보는 것은 어때’라며 조언을 건넸다. 그 지나가는 조언들이 잇달아 이어졌고 모진 성미가 아닌 박병호는 조언들을 모두 귀담아 듣다가 본인에게 맞는 타격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열심히 훈련은 했으나 이도저도 아닌 타격폼과 타격관으로 주체성을 찾지 못했던 박병호다. 여기에 팬들의 비난까지 섞이며 말 못할 마음고생도 심하게 겪었던 바 있다.
그러나 넥센에서는 달랐다. 전임 김시진 감독은 물론 코칭스태프는 지난해 후반기 이적생 박병호에게 ‘네 마음대로 쳐라’라며 놀 마당을 마련해줬고 지난해 박병호는 66경기 2할5푼4리 13홈런 31타점으로 가능성을 비췄다. ‘내 타격도 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얻기 시작한 박병호는 올 시즌 꾸준한 출장 기회를 자신의 소중한 경험으로 삼으며 커다란 기량 성장폭을 보여준 것은 물론 어느새 리그를 대표하는 오른손 거포 대열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박병호의 올 시즌 연봉도 6200만원으로 평균에 못 미치는 금액. 비록 팀의 뒷심 부족으로 포스트시즌 진출 티켓은 사실상 멀어졌지만 중심타자로서 제 역할을 확실하게 해냈다는 것과 홈런-타점 부문 타이틀 획득이 사실상 확정되었다는 점에서 엄청난 연봉 인상이 예상된다.
▲ ‘미운오리’에서 ‘백조’로 화려하게 변신한 노경은
한때 노경은은 팀에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도리가 없는 선수로 취급받기도 했던 유망주다. 박병호와 마찬가지로 성남고를 졸업하고 지난 2003년 1차 지명 입단한 노경은은 이듬해 시즌을 마치고 팔꿈치 수술 여부를 놓고 구단과 마찰을 겪으며 임의탈퇴 위기까지 놓였던 바 있다. 구단에서는 ‘군 입대하는 만큼 수술 없이 2년을 쉬었다 오라’라는 입장이었고 노경은은 팔꿈치가 아픈 상태에서 구단이 선수 생활 위기를 이끈다는 생각에 ‘이 팀에서 야구를 하고 싶지 않다’라는 극언을 던지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수술을 받고 병역을 마친 뒤 2007시즌 복귀했으나 노경은의 처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묵직한 구위를 갖추고 있었으나 마음대로 제구가 되지 않아 1군에서 중용되지 못했고 팀의 백안시와 팬들의 비난도 거셌다. 급기야 2009년에는 자신의 미니홈피에서 악플을 단 네티즌과의 설전으로 인해 잠실구장에 규탄 현수막까지 걸렸던 노경은이다. 2010시즌 발목 부상과 허리 부상까지 겹치며 자칫 노경은은 그대로 방출될 뻔 했다.
2011시즌 전 전지훈련에서 동료 박정배(SK)의 팔꿈치 부상을 틈 타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은 노경은은 지난 시즌 전천후 계투로 가능성을 보여준 뒤 올 시즌 중반부터 팀의 실질적인 선발 에이스로 활약 중이다. 최고 152km의 직구는 물론 투심-포크볼-슬라이더-커브 등 다양한 구질을 어느새 완벽하게 던지는 선발 투수로 활약 중이다.
최근에는 제구력까지 한결 안정되며 33이닝 연속 무실점으로 36이닝 연속 무실점 중인 서재응(KIA)과 함께 9월 최고 투수 자리를 놓고 다투는 노경은이다. 10년차 노경은의 연봉도 5500만원. 이미 1억대 연봉 진입이 확실시 된 노경은은 데뷔 첫 포스트시즌 등판까지 꿈꾸고 있다.
farinelli@osen.co.kr
박희수-박병호-노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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