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포수는 투수를 춤추게 한다. 그리고 전반적인 팀 경기력에 안정감을 불어넣는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엄청난 차이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는 올 시즌 성적표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8개 구단은 포수를 놓고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현장 관계자들은 “좀처럼 좋은 포수 재목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탄이다. 이는 아마추어 야구 현실과 관련이 깊다. 요즘은 좋은 재목들이 포수 마스크를 쓰는 경우를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김시진 전 넥센 감독은 “우리 때는 제일 못하는 선수가 포수를 보는 일도 있었다. 출전시간이 비교적 안정적이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선호도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아무도 포수를 하려 하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포수는 ‘3D 포지션’이라는 인식이 깊다. 중장비를 몸에 둘러싸고 경기 내내 쪼그려 앉아 있어야 한다. 타구에 맞는 일도, 몸싸움에 노출되는 일도 많다. 한편으로는 프로에서 성공하기까지도 오랜 기간이 걸린다. 때문에 자식의 미래를 생각하는 학부모들도 포수를 기피한다. 한 고교팀 감독은 “한 선수에게 포수를 시키니까 학부모가 대놓고 항의하더라”라고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자원은 계속 부족해지는 상황에서 좋은 포수를 찾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설사 좋은 재목을 뽑는다고 해도 인내를 가지고 키워야 한다. 단시간에 효과가 드러나지 않는다. 포수가 불안하면 투수가 흔들리고 결국 팀 전체가 흔들리게 되어 있다. 결국 올 시즌도 포수층이 풍부한 팀들이 좋은 성적을 냈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는 어렵다.
삼성은 류중일 감독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진갑용이 있다. 시즌 전부터 진갑용의 출전시간을 정해놓고 체력을 안배했을 정도다. 여기에 타격이 좋은 이지영이 한 단계 더 성장하면서 여유가 생겼다. SK는 정상호 조인성이라는 리그 정상급 포수가 마스크를 나눠 쓴다. 박경완의 이탈 공백을 최소화했다. 특히 정상호는 4할5푼3리의 도루 저지율로 70경기 이상 나선 선수 중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
두산은 양의지와 최재훈이라는 젊은 포수자원들이 있다. 김진욱 두산 감독은 “올 시즌 양의지가 투수리드 측면에서 많이 성장했다. 둔해 보이지만 글러브에서 공을 빼는 속도도 빠르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최재훈도 어깨 하나만은 리그 정상급이라는 평가와 함께 이토 수석코치의 조련을 받고 있다. 롯데는 강민호라는 리그 최고의 포수를 보유하고 있다. 시즌 중반에는 트레이드를 통해 용덕한이라는 좋은 백업 자원까지 마련했다.
반면 포스트시즌에 나서지 못하는 팀들은 시즌 내내 포수로 고민했다. KIA는 김상훈 차일목 송산이 번갈아가며 홈을 지켰지만 공수 모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허도환 최경철의 넥센, 윤요섭 김태군의 LG, 신경현 정범모의 한화도 포수 포지션이 문제였다. 확실한 주전도 정하지 못한 채 상황마다 끌어쓰다보니 투수들도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았다.
올 시즌을 앞두고 조인성이 FA로 팀을 떠나며 포수 기용에 애를 먹은 김기태 LG 감독은 “김태군 윤요섭 조윤준 등 포수를 다 써봤는데 힘들었다. 김태군은 수비가 좋은데 공격이 약한 반면, 윤요섭은 공격은 좋은데 수비가 약했다”라고 아쉬워했다. 그만큼 공수 모두를 갖춘 포수를 찾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김성갑 넥센 감독대행도 “포수들이 주자를 잡지 못하니 김동수 배터리 코치가 고민을 많이 하더라”라고 이야기했다. 김 감독대행은 “포수가 강한 팀들이 좋은 성적을 낸다. 반면 하위권 팀들은 포수가 약하다. 포수가 불안하면 투수도 불안해진다. 투수들도 경험있는 포수와 호흡을 맞추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김 감독대행은 가장 이상적인 그림에 대해 “확실한 주전포수가 있고 그 백업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전포수들은 팀 내 모든 투수들의 성향을 꿰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유다. 실제 상위 4팀은 모두 100경기 이상을 뛴 포수(진갑용 조인성 양의지 강민호)가 있었다. 반대로 하위 4팀은 100경기 이상을 뛴 포수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경기 혹은 상황에 따라 포수가 바뀌는 일이 많았다. 벤치의 믿음을 줄 수 있는 확실한 선수가 없었다는 의미다. 안방마님이 자주 바뀌는 것은 가정의 화목을 깨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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