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타자들은 머리가 아프다. 20년 전에 비해 투수들이 던지는 구종은 훨씬 더 다양해졌다. 주자가 루상에 있을 때, 혹은 작전이라도 걸렸을 때는 더하다. 배터리의 대처 능력과 수비 시프트 전술도 좋아졌기 때문에 순간의 방심은 참사를 부른다.
때문에 타자들의 머릿속은 계속 복잡해지고 있다. 그러다보면 소극적으로 변하고 자신 있는 스윙을 하기 힘들다. 운이 따르지 않는 이상 질 좋은 타구는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는 최악의 상황인 병살로 이어진다. 벤치와 팬들의 속은 타들어간다. 김기태 LG 감독은 “작전은 벤치에서 낸다. 작전이 실패하면 벤치가 책임지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선수들이 너무 생각이 많아 기본적인 작전조차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진단했다.
올 시즌 타자들이 유난히 고전하고 있는 것도 이런 경향이 심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타석에 설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지나친 생각의 홍수는 타격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또 많은 생각은 슬럼프가 길어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주목받는 것이 바로 삼진이다.

스트라이크가 세 개 들어오는 동안 공을 제대로 맞히지 못한 삼진은 타자들에게 굴욕적인 상황일 수 있다. 투수들의 기를 살려주거나 경기 흐름을 상대에게 넘기는 원흉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꼭 부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각 팀 코칭스태프는 “자신 없는 스윙을 할 바에는 차라리 삼진을 당하더라도 화끈하게 배트를 돌리는 것이 낫다”라고 입을 모은다.
이만수 SK 감독은 “생각이 많으면 주자가 있을 때 과감하게 치지 못한다. 대부분 범타다”라고 이야기했다. 이 감독은 “요즘 선수들은 너무 생각이 많다. 주자가 있을 때 강공 사인을 냈는데도 팀 배팅을 생각해 밀어치려고만 한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누가 밀어 치라고 바깥쪽 공을 주겠나. 마음대로 타구가 안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양승호 롯데 감독도 “자꾸 갖다 맞히려고만 한다. 그러다보면 좋은 타구가 나오지 않는다”고 동조했다.
이만수 감독은 “그런 스윙보다는 차라리 삼진을 당하는 것이 낫다”라고 단언했다. 차라리 삼진을 당하면서 얻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이 감독은 “삼진을 당하며 뭐가 잘못됐는지는 타자들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다음 타석에 도움이 될 수 있다”라고 했다. 김진욱 두산 감독도 “김기태 LG 감독이 현역 시절 삼진을 잘 이용했다. 스윙을 하면서 타이밍을 맞춰 가더라. 요즘은 홍성흔(롯데) 이호준(SK)이 그렇다. 선수들이 방망이를 자신 있게 낼 필요가 있다”라고 주문했다.
투수들에게 주는 위압감도 있다. 김진욱 감독은 “투수들은 방망이를 시원하게 돌리는 타자들을 가장 무서워 한다”라고 했다. 양승호 감독도 “스윙을 자신 있게 하면 투수들도 쉽게 던지지 못한다. 반면 머뭇머뭇 거리며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는 타자들은 편하다”라고 설명했다. 벤치도 기대를 갖게 된다. 김성갑 넥센 감독대행은 “시원하게 휘두르고 그러면 벤치도 다음 타석에 대한 기대치가 생기기 마련이다”라고 좀 더 적극적인 타격을 바랐다.
삼진에 대한 인식이 예전처럼 부정적이지도 않다. 이만수 감독은 “예전에는 삼진을 당하면 야유를 많이 받았다. 하지만 삼진이든 땅볼이든 뜬공이든 똑같은 아웃카운트 하나 아닌가. 요즘 선수들도 특별히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라고 귀띔했다.
실제 올 시즌 MVP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박병호(넥센)는 109개로 리그 삼진 2위다. 이승엽(삼성)도 전성기에는 항상 100개의 삼진을 꼬박꼬박 채우는 선수였다. 분명 삼진이 최선은 아니겠지만 최선을 향하는 하나의 과정이 될 수는 있음을 보여주는 자료다. 생각의 시대에서 한 번쯤은 더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삼진의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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