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과 도약, 부활과 자존심… 10승의 의미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2.09.30 07: 01

2할9푼9리의 타자와 3할 타자는 다르다. 고비를 넘겨본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는 다르다는 뜻이다. 이 말을 마운드에 대입한다면 “9승 투수와 10승 투수는 다르다” 쯤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10승을 기록했다는 것은 기량은 물론 그만큼 꾸준히 활약했다는 말이 된다. 누구에게나 허용되지 않는 훈장이기에 의미도 제각각이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던 윤희상(27·SK)이 생애 첫 10승 고지를 밟았다. 윤희상은 29일 광주 KIA전에서 6이닝 5피안타 6탈삼진 1실점으로 10승의 영예를 안았다. 올 시즌 13번째 10승 투수이자 SK에서는 2년 만에 나온 복덩이다.
선수 스스로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할 만하다. 고교 시절 유망주로 인정받았던 윤희상은 부상과 부진의 늪에서 쉽게 탈출하지 못했다. 2004년 프로 데뷔 이후 2010년까지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사라질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지난 시즌 중반부터 팬들에게 이름을 알렸고 올 시즌 10승 투수로 우뚝섰다. 새로운 탄생이라고 할 만하다.

이미 10승을 거둔 투수들 중에서도 윤희상처럼 ‘10승’이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이들이 있다. 이용찬(23·두산)은 10승을 통해 마무리투수에서 선발투수로의 완벽한 전환에 성공했다. 2009년과 2010년에 걸쳐 도합 51세이브를 따냈던 이용찬은 선발 전업 후 첫 시즌이었던 지난해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그러나 겨우 내내 착실히 준비한 끝에 올 시즌 리그를 대표하는 우완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노경은(28·두산)의 10승은 윤희상과 이용찬의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다. 노경은은 좋은 공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해 벤치의 애를 태웠다. 스스로의 스트레스도 컸다. 그러나 한 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시즌 중반 선발로 보직을 바꾼 뒤 승승장구했고 두 번이나 완봉승을 기록하며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선발승으로만 따지면 9승인 노경은은 남은 한 차례의 등판에서 ‘선발 10승’까지 노리고 있다. 야구 인생의 최대 도약이다.
10승이 ‘부활’의 의미를 갖는 선수도 있다. ‘푸른피의 에이스’ 배영수(31·삼성)가 주인공이다. 리그 최고의 투수로 이름을 날렸던 배영수는 팔꿈치 수술 이후 완연한 내리막을 탔다. 150㎞를 우습게 알던 구속이 떨어지면서 난타 당했다. 2009년에는 1승12패 평균자책점 7.26으로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꾸준한 보강훈련을 통해 구위를 되살렸고 타자들을 상대하는 노련미까지 갖추며 올 시즌 무난하게 10승을 넘겼다. 2005년 11승 이후 7년 만에 다시 찾은 10승 투수의 금배지다.
넥센의 에이스 브랜든 나이트(37)의 10승은 믿음의 상징이다. 한국 생활 4년차를 맞는 나이트는 3년 동안 단 한 번도 10승을 거두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7승15패 평균자책점 4.70으로 외국인 투수에게 걸리는 기대치를 채우지 못했다. 그럼에도 넥센 코칭스태프는 지난해 막판 일찌감치 나이트를 감싸 안았다. 무릎 상태만 호전되면 더 좋은 공을 던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그 바탕에 깔려 있었다. 벤치의 믿음에 부응한 나이트는 올 시즌 15승을 거두며 투수 부문 3관왕(다승·평균자책점·승률)을 노리고 있다.
누구에게는 10승이 자존심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대한민국 에이스 류현진(25·한화)은 시즌 마지막 등판에서 10승에 도전한다. 2006년 데뷔 이래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했던 류현진은 올 시즌 승운이 따르지 않으며 승수 추가가 더뎠다. 그러나 후반기 들어 10승에 대한 의지를 불사르며 29일 현재 9승을 기록 중이다.
류현진이 10승을 달성할 경우 역대 세 번째 7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라는 업적도 따라온다. 한편 9승을 기록 중인 지난해 최고 투수 윤석민(26·KIA)도 류현진과 비슷한 상황이고 역시 9승인 김진우(29·KIA)는 배영수보다 더 감격적인 부활쇼의 방점으로 10승을 겨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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