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마지막 이닝에서 무너진 노히트노런 실패사(史)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2.10.01 08: 10

대기록을 앞두고 종반에 이를수록 극도로 긴장될 수 밖에 없는 극히 자연스런 투수들의 심리적인 문제, 완투에 다다르기까지 누적된 투구수로 인한 체력적인 부담감과 그로 인한 실투의 위험, 반복되는 타석으로 투구패턴과 궤적이 타자들의 눈에 익어있다는 점, 망신살을 벗어나기 위한 상대타자들의 절박함이 만들어내는 초고도의 집중력, 경기상황이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 보이는 상대의 비상식적인 경기매너 등을 모두 극복해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이 노히트노런이다.
한국프로야구에서 기록된 노히트노런은 모두 10차례(포스트시즌 포함 11차례). 1984년 어린이날인 5월 5일 상대적으로 그다지 주목 받지 못했던 방수원(해태)이 삼미를 상대로 광주구장에서 첫 노히트노런을 작성(그 해 유일한 1승)한 이래 2000년 5월 18일 송진우(한화)가 역시 광주구장에서 해태를 제물로 삼아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것을 마지막으로 대기록 탄생은 무려 12년째 난산만을 거듭해오고 있다.
지난 9월 26일 윤석민(KIA)은 대구 삼성전에서 8회까지 노히트노런을 이어가다 9회말 선두타자 박한이에게 중전안타를 얻어맞는 바람에 대기록을 목전에서 날려야 했는데, 윤석민 개인으로서는 올해 벌써 두 번째의 노히트노런 무산이라는 점에서 그 아쉬움의 체감지수는 지난번 보다 훨씬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윤석민은 지난 5월 11일 광주 두산전에서도 8회초 1사후 손시헌에게 중전안타를 허용, 대기록의 꿈을 접은 바 있다.

그러면 지금까지 거의 종착역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이닝에 이르러 무산된 노히트노런이나 퍼펙트게임은 모두 몇 차례나 될까? 익히 알려진 사례를 전부 꼽아보면 이번 윤석민의 실패는 12번째에 해당되는 유산이었다. 이미 완성된 10차례의 노히트노런을 합쳐 계산하면 총 22번의 마지막 이닝 도전에서 고비를 넘어 노히트노런급 이상의 기록이 탄생될 성공확률은 채 50%를 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최종이닝에서 무너진 최초의 실패사례는 1982년 삼성의 황규봉으로 기억되고 있다. 광복절이었던 8월 15일 대구구장에서 삼미를 상대로 8회까지 퍼펙트게임을 펼쳤지만 9회 선두타자 양승관(삼미)에게 안타를 맞고 완봉승에 만족해야 했었다.
9회에 퍼펙트게임이 산산조각 난 사례로는 2007년 두산의 다니엘 리오스도 있다. 개천절인 10월 3일 잠실 현대전에서 9회초 1사후까지 기록을 지켜갔지만 포수 강귀태(현대)에게 안타를 내주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딱 한 명만 잡아내면 되는 최후의 순간에 노히트노런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 절대 비운의 투수로는 조계현(해태)과 이범석(KIA), 그리고 김광현(SK)이 있다.
조계현은 1993년 4월 11일 광주구장에서 LG를 맞아 9회초 2사까지 노히트노런을 이어갔지만 송구홍에게, 이범석은 2008년 7월 4일 대구 삼성전에서 박석민에게, 김광현은 2010년 6월 10일 문학 삼성전에서 최형우에게 각각 안타를 허용하며 하나 남은 고비를 이겨내지 못하고 마지막 순간에 주저앉고 말았었다.
그 외 노히트노런 무산기록을 둘러싼 특이한 사연으로는 1999년의 박진철(해태), 2000년의 김수경(현대) 그리고 2005년의 장원준(롯데)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박진철은 광주구장에서 현대를 맞아 9회초 1사까지 1-0 리드 속에 노히트노런을 유지했지만 주자 1, 3루 위기상황에서 박경완의 스퀴즈번트로 실점을 허용하는 바람에 대기록을 날려야 했었다. 9회를 모두 마치는 동안 박진철은 단 1개의 안타도 내주지 않는 노히트게임을 펼쳤지만 실점이 치명타가 되어 기록 등재에 실패한 경우다.
2000년 김수경의 경우는 허무함 그 자체였다. 수원구장에서 해태를 맞아 9회초 1사까지 기록을 그려가고 있었지만 타바레스의 기습번트 안타 한 개에 그림이 완전히 엉망이 되고만 일이다. 11-0이라는 커다란 점수차에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번트 때문에 경기매너 문제가 도마에 올라 세상을 뜨겁게 달궜던 사연이 담겨 있는 기록이다.
2005년 장원준은 광주 KIA전에서 9회말 1사까지 역시 노히트노런의 끈을 잡고 있었지만 이종범의 1루쪽 강습타구가 우전안타가 되는 것으로 착각, 순간 낙심하다 1루 베이스커버를 늦게 들어가는 바람에 내야안타를 헌납한 일로, 다음날 장원준은 경기 전 투구 후 1루 베이스커버를 들어가는 연습을 혼자서 한참 동안이나 반복해야 했었다.
이처럼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노히트노런 등의 대기록이 무산된 역사 속에는 이런저런 각양각색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2000년 이후 12년이 지나도록 노히트노런은 맥이 완전히 끊겨 있는 상태지만, 그 명맥을 잇기 위한 대기록을 향한 투수들의 몸부림은 수면 아래에서 끊임없이 이어져오고 있다. 이번 윤석민은 송진우 이후 김수경(2000)-임창용(2001)-장원준(2005)-신재웅(2006)-리오스(2007)-이범석(2008)-김광현(2010)에 이은 8번째 최종이닝 도전이었다.
한편 이러한 최종이닝 기록수립 실패사례 계보에서 재미있는 내용 하나가 눈에 들어오는데, 최근 삼성이 대기록의 제물이 될뻔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박석민-최형우-박한이 등 주력타자들의 도움으로 연속 3차례나 극적으로 도망쳐 나왔다는 점은 아주 이채로운 대목이라 하겠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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