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영화 안된다? '고지전' 정도면 된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2.10.01 10: 17

옛날에는 웬만한 영화는 다 TV에서 봤다. 토요일 저녁 MBC '주말의 명화'와 일요일 밤 KBS '명화극장'은 영화에 굶주린 청소년들이 부모 옆에 살짜쿵 누워서 흘러간 명화들을 볼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주연남녀의 키스 장면 때 저절로 동그래지는 눈동자와 민망해서 '끙'하는 아버지 헛기침 소리라니..
그래서 1980년대까지만해도 TV 프로그램 편성에서 영화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특히 명절 때면 지상파 TV들은 강력한 특선영화들을 준비해 며칠씩 예고를 때려가며 시청자 뺏기에 열을 올렸다. 그래서 명절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영화 몇 편씩을 즐기는 풍경이 지난 세기에는 흔하디 흔했다. 지금은?
1990년대 홈 비디오 보급으로 강타를 허용한 TV 영화시장은 그후 케이블 TV의 등장과 함께 그로기 상태가 됐고, 2000년대 디지틀 세상에서는 호랑이 담배나 다름없다. TV 편성에서 찬밥 신세는 당연한 거고, '전국노래자랑'은 남았어도 '명화극장' '주말의 명화'가 아예 퇴출된게 벌써 오래전이다.

지상파 TV 측은 이에대해 수요가 없다고 말한다. 들어가는 제작비(영화 판권)에 비해 시청률은 현격히 낮다고 하소연이다. 최신영화는 극장에서 보거나 조금만 지나면 IP TV나 불법 다운로드로 다 보는 세상에 누가 굳이 명절날 TV에서 특선영화를 보겠냐며 외면한다.
하지만 TV영화시장의 축소가 과연 시청자 탓만일까. 재탕 삼탕은 기본이고 명절마다 할머니 사골 삶듯 몇번씩 우려내는 특선 고정영화들로 시청자를 물리게 한 건 바로 TV제작진 쪽이다. 세상은 변했는데도 맨날 값싸다고 추억의 영화만 들춰되니 어리고 젊은 세대들은 집안 어른들과 명절날 안방에서 영화 보기를 아예 포기해 버렸다. 거꾸로 옛날 TV영화 전성기의 향수에 젖어있던 386세대와 노년층은 매냥 본 영화 또 볼라니 지겨워서 한마디다. "극장 갈 시간 없어서 요즘 영화 못본 것도 지천인데.."
올해 추석인 9월 30일 KBS 2TV는 장훈 감독의 문제작 '고지전'을 추석특선영화로 오후 11시8분부터 심야 상영했다. 1, 2부로 나누는 꼼수를 쓰기는 했지만 1부 전국 시청률 8%, 2부 6%(AGB닐슨 집계)로 동시간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시청률 고공비행을 했다.
볼만한 영화를 틀어주면 당연히 본다는 게 시청자 마음이다. 특급 작가랍시고 막장 드라마 한 편에 수 억원씩 원고료를 주고, 특급 배우(MC)랍시며 1회 출연료 수 억원씩을 아끼지 않는 지상파 TV들이 시청자들을 위해서 명절 특급영화 한 편에 수 억원씩 펑펑 써줬으면 하는 게 가족 시청자들의 한결같은 바람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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