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더 믿어보자니 지금까지 보여준 성과가 마땅치 않다. 그렇다고 버리자니 아쉬움이 남는다. SK의 외국인 투수 데이브 부시(33)가 ‘계륵’의 신세에 놓였다.
9월 들어 가파른 상승세를 탄 SK는 두산과 롯데를 밀어내고 플레이오프 직행을 확정지었다. 가장 큰 원동력은 기막힌 타이밍에 정상적으로 돌아온 선발투수들이다. 송은범을 시작으로 채병룡 김광현 마리오까지 모두 두통약 하나씩을 손에 들고 전력에 가세했다. 선발투수들이 안정적으로 경기를 끌고 가자 SK 특유의 세밀한 플레이도 빛을 발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전력에 가세하지 못한 선수가 있으니 바로 부시다. 지난 6월 아퀼리노 로페즈의 대체 외국인 선수로 한국무대를 밟은 부시는 메이저리그 통산 56승의 화려한 경력으로 기대를 모았다. 초반에는 괜찮았다. 7월까지는 비교적 순탄한 행보였다. 그러나 8월 이후 구종과 투구 패턴이 읽히기 시작하면서 제 몫을 못하고 있다. 게다가 홈구장인 문학구장을 제외한 나머지 경기장에서는 마운드 적응에 애를 먹었다. 스스로 운신폭을 좁힌 꼴이 됐다.

급기야 9월부터는 선발 로테이션에서도 밀려났다. 4경기에 등판하는 데 그쳤고 그 중 선발 등판은 2번이었다. 4경기 결과도 9이닝 동안 1패 평균자책점 11.00으로 부진했다. 이만수 SK 감독은 8연전 기간 중 “부시가 선발로 복귀해야 하는데 기량이 좀처럼 안 나온다. 성준 투수코치와 많은 대화를 하고 있지만 불펜에서 대기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라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벤치의 믿음이 떨어졌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 감독은 “포스트시즌에서도 지금의 선발 로테이션대로 간다”라고 공언했다. 윤희상 송은범 김광현 마리오 채병룡을 주축으로 한다는 구상이다. 이 중 한 명은 롱릴리프 요원으로 돌릴 수 있다. 부시의 복귀가 아주 절실한 상황은 아니다. 때문에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포함된다 하더라도 패전조에서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대로 버리기에는 아깝다. 포스트시즌과 같은 단기전에서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투수이기 때문이다.
SK는 이미 지난해 이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이 감독은 “준플레이오프부터 올라갔는데 막상 한국시리즈에 가니 던질 투수가 없더라”라고 회상했다. 귀한 외국인 선수 카드 하나를 허투루 사용할 수 없는 이유다. 만약 부시가 기대만큼의 구위를 회복할 경우 SK도 한결 수월한 마운드 운영이 가능하다. 지난해 삼성이 그랬듯 선발급 투수 2명을 한꺼번에 쏟아 붓는 ‘1+1’ 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다.
부시는 4일 대구 삼성전에 선발 등판한다. 지난 9월 16일 문학 KIA전 이후 18일 만의 선발 등판이다. 주축 선발 투수들의 휴식을 보장하기 위한 의미도 있지만 부시에 대한 마지막 테스트의 의미도 있다. 게다가 상대는 한국시리즈 진출시 상대하게 될 삼성이다.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경우 부시 활용법에 고심하고 있는 SK 벤치의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SK의 정규시즌은 마무리되는 분위기지만 부시의 시즌은 아직 진행 중이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