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팔꿈치 수술 이후 인고의 세월을 거쳐 7년 만에 10승 고지를 밟았다. '이제 한 물 갔다' 또는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등 부정적인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이대로 무너질 순 없었다. 뼈를 깎는 고통을 견뎌내며 보란듯이 재기에 성공했다. 주인공은 '영원한 에이스' 배영수(31, 삼성).
배영수는 올 시즌 26차례 등판을 통해 12승 8패(평균자책점 3.21)를 거두며 명예 회복에 성공했다. 직구 최고 148km까지 스피드건에 찍힐 만큼 구속을 끌어 올렸고 다양한 레파토리를 구사하며 더욱 노련미 넘치는 투구를 과시했다.
"시간이 참 빠르다. 그동안 열심히 준비한 만큼 어느 정도 성과를 얻었고 2년간 시행착오를 겪으며 여러가지 배웠는데 올 시즌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준 것 같아 2년이라는 세월이 헛되지 않은 것 같다. 땀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다". 3일 대구 두산전을 앞두고 기자와 만난 배영수는 올 시즌 되돌아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올 시즌 호투 비결이 궁금했다. 배영수는 "몸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고 좋고 나쁠때의 기복을 줄이는 요령을 조금씩 터득하고 있다. 기복이 있으면 절대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다"고 대답했다.
지난해 11월 일본 돗토리현 월드윙 트레이닝센터에서 개인 훈련을 소화했던 배영수는 야마모토 마사(주니치 드래건스 투수)의 조언이 큰 힘이 됐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마음만 있으면 다 되는게 마음을 먹는 게 참 힘들다. 지금도 그 마음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헷갈린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내게 알맞은 운동을 하는 게 정답이다".
올 시즌 삼성 선발진의 생존 경쟁은 치열했다.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경쟁 후보에 비해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소리없는 강자'라는 표현처럼 조용히 칼을 갈면서 기회를 엿보았다.
"작년 마무리 캠프 때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되는 게 첫 번째 목표였다. 경쟁에서 무조건 이기고 싶었고 어떻게 보면 나는 무조건 선발 투수로 뛰겠다는 마음으로 운동했었다". 전훈 캠프 때 선발 경쟁에서 배제되는 듯한 인상을 받을때면 더욱 독기를 품었다.

8월 26일 잠실 LG전. 배영수가 말하는 올 시즌 최고의 경기다. 이날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배영수는 7이닝 무실점(4피안타 4탈삼진) 호투를 뽐내며 7년 만의 10승 달성과 함께 통산 100승·1000탈삼진을 동시에 달성했다.
"야구하면서 가장 기분좋은 10승이 아닐까. 올 시즌 25차례 선발 등판을 통해 160이닝 가까이 소화했는데 앞으로 더 많은 이닝을 던지는 게 목표다. 170~180이닝은 책임지고 싶다".
배영수는 올 시즌 두 차례 완투를 소화했다. 그만큼 팔꿈치 상태가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배영수는 "올 시즌 완투 및 완봉에 대한 욕심을 많이 냈었다. 선발 투수라면 누구나 완투 또는 완봉에 대한 욕심을 갖고 있다. 5이닝만 던지기 위해 마운드에 오르는 건 아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선발, 중간, 마무리 등 투수 역할이 분업화돼 그렇고 어떻게 보면 선발 투수가 몸을 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번쯤은 지적해야 할 부분이다. 5~6이닝만 던지고 싶은 선발 투수는 세상에 없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선발 투수라면 똑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선발 투수로서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하길 원했다.
디시인사이드 갤러리 삼성 라이온즈 회원들은 배영수의 개인 통산 100승 달성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트로피와 떡세트를 선물했다. 그리고 외방커뮤니티 야구방 회원들도 정성을 모아 배영수에게 감동 가득한 선물을 안겨줬다.
"늘 고맙다". 배영수는 팬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짧은 한 마디에도 진심이 묻어났다. 그는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등돌린 팬들, 안타까워했던 팬들, 뒤에서 묵묵히 지켜봐주신 팬들도 있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배영수의 롤모델은 구로다 히로키(뉴욕 양키즈 투수). "점점 구로다의 투구 패턴을 닮아가는 게 뿌듯하다"는 배영수는 "정말 야구를 알고 하는 투수 같다. 언젠가 인터뷰를 통해 몸관리 비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 감동이었다. 투수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아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평소 인터넷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지만 구로다의 투구 동영상은 빼놓지 않을 정도다.
마지막으로 한국시리즈를 앞둔 그의 각오를 듣고 싶었다. 배영수는 "이제 정말 중요한 경기가 남았는데 나만의 가을 준비 노하우가 있다. 영업 비밀이라 공개할 수 없지만 야구를 오래 하다 보니 조금씩 그러한 노하우가 생겼다. 돌이켜 보면 어린 나이에 일찍 경험한 게 큰 자산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올 가을에도 웃고 싶다"고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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