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2012시즌이 종료된 가운데 4위권 팀에 주어지는 포스트시즌 진출 티켓의 주인은 단 하나만 바뀌었다. 2011시즌 삼성-롯데-SK-KIA였던 4강 구도는 올 시즌 삼성-SK-두산-롯데로 KIA가 빠지고 지난해 5위 두산이 들어섰을 뿐, 하위권 팀의 반란은 없었다.
시즌 초반까지는 한화를 제외한 7개 팀이 매일 자리를 바꾸며 치열한 순위 싸움을 벌였고, 전반기가 마무리 됐을 때는 넥센이 3위에 자리하며 이변을 일으키는 듯했다. 하지만 시즌이 끝난 후 결과는 지난 5년과 대동소이했다. 2008시즌부터 올 시즌까지 SK와 롯데가 4자리 중 2자리를 고정적으로 차지했고 삼성과 두산이 4차례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KIA는 2번 4강에 들어갔다. 반면 LG, 넥센, 한화 앞에는 늘 높은 벽이 포스트시즌 진출을 가로 막았다.

5년이란 시간, 그리고 선수들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기량이 떨어지는 것을 생각하면 포스트시즌 단골 팀들이 단순히 전력이 좋아서 4강을 독차지 한다고 보기엔 힘들다. 또한 이들 모두 최근 2년 동안 감독 교체를 겪은 만큼 특정 감독의 지도력이 절대적이었다고 결론지을 수도 없다.
결국 구단 시스템이다. 시스템이 팀의 기반을 형성하고 강한 기반이 갖춰졌을 때 팀은 꾸준할 수 있다. 시스템이란 개념이 너무 광범위하지만 실제로 구단의 전력은 감독 한 명, 선수 몇 명의 힘으로 형성되는 게 아니다. 감독이 추구하는 야구스타일, 구단 특유의 분위기, 훈련 집중도, 신인 드래프트 방향성, 신진선수들 육성 방법,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의 호흡, 운영팀의 현장 지원력, 사장 혹은 단장의 계획성 등이 모두 시스템에 포함된다. 어쩌면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경기력은 이런 것보다 한 참 뒤에 논의되어야할 일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야구경기를 이기기 위한 방법론은 정해져있다.
2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한 삼성은 2000년대 중반 마운드에서 어린 선수들을 꾸준히 발굴하며 지키는 야구를 했었다. 그리고 2000년대 후반에는 야수진에도 신진세력이 하나 둘씩 나타났고 올해 마침내 공수 모두에서 정상에 위치했다. 최고의 2군 시설과 재활 시설을 기반으로 정상급 선수들이 나타난 가운데 빠른 군입대로 선수단 순환도 순조롭게 이뤄진다. 이제는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삼성 유니폼을 입는 선수에게 저절로 시선이 간다.
SK는 지난 5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경험을 바탕으로 선수단 전체에 이기는 야구가 몸에 뱄다. 이기는 야구는 팀 전체에 자신감을 선물했고 내부경쟁을 유도했다. 그러면서 지난 5년 동안 수많은 2군 선수, 혹은 1군 무명 선수가 팀의 주축으로 발돋음했다. 2008시즌 당시 SK의 신고 선수였던 한 선수는 “그저 1군 경기만 바라보고 있어도 엄청난 야구 공부가 됐다. 그리고 이 팀은 도무지 지질 않을 것 같았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의 신고 선수는 몇 년 전 팀을 옮겨 주전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다.
두산 야구는 언젠가부터 ‘화수분 야구’로 통했다. 매번 시즌 전에는 하위권 전력으로 평가받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면 의외의 선수들이 튀어나와 새로운 별이 됐다. 그중에는 드래프트 1라운드 출신의 유망주도 있었고 신고 선수, 혹은 타 팀에서 방출되어 두산 유니폼을 입은 무명 선수도 더러 있었다. 청사진을 그려놓고 드래프트 지명에 임하고 수준 높은 2군 시설로 프로입단부터 신예 선수들의 내부경쟁을 유도했다. 그러면서 두산은 주축 선수 한 두 명이 빠져도 누군가가 그 자리를 자연스럽게 메운다.
롯데 야구는 2008년을 시작으로 빠르게 고유의 색깔을 만들어갔다. 공격적이고 화끈한 야구를 표방하며 거침없는 타격으로 수년간 앓아왔던 패배의식에서 벗어났다. 분위기만 타면 자신감이 넘쳤고 그러면서 승리하기 시작했다. 섬세함이 모자라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스템이 견고해졌고 약점도 메워졌다. 그 가운데 2군 시설을 신설하며 기반을 단단하게 했다. 이제는 그 누구도 롯데 야구를 두고 2000년대 초중반의 허술한 야구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위에 4팀이 고유의 시스템을 구축한 반면 나머지 네 팀, 특히 넥센, LG, 한화는 뚜렷한 색깔 없이 긴 방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넥센은 지난 몇 년 동안 ‘선수 팔기’식 트레이드로 현대 시절의 영광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LG는 수차례 감독이 바뀌면서 1·2군 선수들 관리와 육성에서 번번이 그릇된 방향전환과 시행착오를 겪었다. 한화는 2000년대 중반 대권도전과 리빌딩의 사이에서 확실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잘못된 로드맵과 목표설정으로 매년 좌충우돌이다.
프로야구단은 커다란 조직체이다.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선수들의 활약, 감독의 용병술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들 외에 조직이 현장과 함께 호흡하지 못한다면 절대 그 팀은 꾸준할 수 없다. 그래서 팀 고유의 시스템이 필요하며 시스템이 갖춰져야 구단이 안정권에 들어설 수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2012시즌이 종료된 시점에서 넥센과 한화는 곧 새 사령탑을 앉히려고 한다. 넥센과 한화가 새 감독 선임을 통해 기존 시스템을 강화하려고 할지, 아니면 새로운 시스템을 정착시키려고 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쨌든 이들이 좁은 시선으로 빠르게 무언가를 이뤄낼 목적으로 새 감독을 뽑는다면, 또한 현장 지원과 의사소통은 제자리 걸음이라면, 다른 결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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