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김현수가 극복해야 할 병살기록의 트라우마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2.10.09 13: 33

설마 했는데 결과는 또 더블아웃이었다. 이쯤 되면 한풀이 굿이라도 한판 치러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의 난전으로 내닫던 롯데와의 2012 준플레이오프 1차전을 기분 좋은 역전승으로 장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두산 김현수 앞에 차려졌다. 5-5 동점에서 맞닥뜨린 9회말 1사 주자 1,2루 상황. 안타 하나면 충분했고 이날 김현수의 타격감은 그다지 나빠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김현수가 마음먹고 잡아 당긴 안타성 타구는 롯데 1루수 박종윤의 미트 속으로 그대로 빨려 들어갔고, 딱 소리와 동시에 무게중심이 이미 2루쪽으로 쏠린 1루주자 오재원 역시 어찌 손써볼 틈도 없이 함께 더블아웃 되고 말았다. 땅볼타구가 아니라 공식기록상 병살타는 아니었지만 결과는 또 한번의 병살. 그라운드에 누워버린 김현수의 짙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안고 연장전으로 이어진 경기결과는 롯데의 8-5 승리였다.

준플레이오프 개막을 앞두고 치러진 미디어데이에서 포스트시즌 하면 병살타 밖에 기억나는 것이 없다고 극단적으로 말했을 정도로 과거 포스트시즌에서 고비마다 귀신처럼 따라붙던 병살과의 악연을 가장 먼저 떠올렸던 김현수에게 있어 병살은 일종의 트라우마였다. 우리는 과거 정신적 충격이나 좋지 않은 경험으로 인해 비슷한 상황이 되면 심리적으로 불안해지는 증세를 흔히 트라우마 라고 부른다.
올 시즌 김현수가 491타석에서 기록한 병살타 수는 불과 9개. 가장 많은 병살타를 기록한 삼성 최형우의 20개에 절반도 미치지 못하며, 팀 내로 범위를 한정해도 17개의 양의지, 16개의 이원석에 한참 모자라는 수치를 가지고 있다. 김현수가 본격적으로 풀 시즌을 뛰기 시작한 2007년 이후 6년간의 성적 평균치를 뽑아봐도 1년에 대략 10개 정도의 병살타(통산 64개)를 기록해왔을 뿐이다. 김현수와 병살타는 그저 그런 관계이다.
그럼에도 포스트시즌만 되면 김현수 이름 석자 앞에 유독 병살이라는 단어가 타이틀처럼 줄곧 따라붙는 이유는 바로 김현수가 갖고 있는 돌이키고 싶지 않은 과거의 아픈 기억들 때문이다.
김현수는 2008년 SK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과 5차전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병살타를 기록한 아픈 경험을 안고 있다. 2-3으로 끌려가던 3차전 9회 말 1사 만루상황에서 그리고 0-2도 뒤지던 5차전 9회 말 1사 만루상황에서 친 내야땅볼이 모두 병살타로 귀결된 일이었다. 지금도 야구팬들은 당시 5차전에서 SK의 우승을 확정지었던 김현수의 병살타를 기억하고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병살타를 치고 분한 마음에 왈칵 눈물을 쏟아내던 김현수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병살타와 관련해 김현수의 눈물은 2010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에서도 이어졌다. 2-4로 리드 당하던 3차전 3회말 1사 주자 1, 3루에서 병살타를 기록하고 4회초 수비때 임재철로 교대되고 난 뒤 덕아웃에 앉아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던 김현수는 연장 11회 말 대신 들어간 임재철의 동점타와 손시헌의 역전타로 9-8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그라운드로 달려나와 임재철을 부둥켜안고 다른 선수들이 기쁨에 겨워 함박 웃음을 웃을 때 또 한번 한 서린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내야 했었다.
그 해 김현수는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한 차례,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도 각각 한 차례씩의 병살타를 기록하고 있던 터라 심리적으로 상당히 위축되어 보였던 또 하나의 포스트경기 시리즈로 기억되고 있다.
곁가지로 김현수의 병살기록 내용에 있어 공교로운 점 한가지는 병살타를 기록한 대부분의 상황이 거의 초구 또는 2구째를 건드려 일어났다는 사실인데, 정규시즌 때도 타석에서 늘 적극적인 성향을 보이곤 하는 그의 타격 스타일상 이는 결과적으로 어쩔 수 없이 수반되는 기록적인 결과로 해석될 수 있겠다.
현재 시점으로 장차 한국프로야구 개인 최다안타 신기록인 양준혁의 2318개의 안타기록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큰 선수를 꼽아보라 한다면 그것은 바로 두산의 김현수이다.
아직 만 24세라는 젊은 나이임에도 프로 6년간(2006년 데뷔년도 기준으로는 7년) 연평균 140개를 상회하는 통산 847개의 안타를 때려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찌감치 타격에 관한 재능을 인정받고 있는 그가 향후 이뤄낼 기록의 꼭지점이 어디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져 온다.
지금 포스트시즌에서 김현수가 써가고 있는 병살에 관한 기억들은 크게 보면 성장통의 일부이다. 젊음을 무기로 결과적 실패의 기억에 연연해하지 않는다면 가을무대에서 크게 포효할 날도 분명 있으리라 생각된다. 야구가 그렇지 않던가. 어제의 역적이 오늘의 영웅이 되고, 지금의 실패가 내일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디딤돌이 되곤 하던 수많은 경우와 교훈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야구에 열광하며 울고 웃는 진짜 이유인지도 모른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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