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스스로 점수를 매기면 50점 밖에 못 주겠다".
일본 프로야구 진출 첫 해 대한민국 최고의 타자라는 명성에 부끄럽지 않은 성과를 거둔 이대호(30,오릭스 버펄로스)는 한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아쉬움이 더해진 표정이었다. 그렇지만 올 한 해 성적이 우연이 아니라는 듯 자신감이 넘쳤다.
이대호는 10일 오후 부산 김해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아내인 신혜정씨, 그리고 딸 효린 양과 함께 출국 게이트를 빠져 나온 이대호의 첫 마디는 "한국말로 인터뷰를 하게 돼 좋다"였다.

지난해 롯데 자이언츠를 떠나 일본 퍼시픽리그의 오릭스 버펄로스 유니폼을 입은 이대호는 타율 2할8푼6리 24홈런 91타점으로 4번 타자다운 위용을 뽐냈다. 퍼시픽리그 타점왕에 오르며 1975년 퍼시픽리그 타격왕을 차지했던 백인천 전 감독 이후 37년 만에 일본 프로야구에서 타이틀을 차지한 한국 선수가 되는 영광을 누렸고 홈런 2위·타율 10위 등 공격 전 부문에서 상위권에 랭크됐다.
다음은 이대호와 취재진의 일문 일답이다.
- 귀국 소감은?
8~9개월만에 한국에 들어온 것 같다. 일단은 무사히 시즌을 마치고 입국했는데 한국 언론이나 팬들이 많이 와주셔서 기쁘다. 일본에서 혼자 열심히 하며 기대에 부응하고자 했는데 내년 좋은 성적으로 보답 하겠다.
-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았는지.
전 경기 뛰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집에서 아침 7시 반에 나가는 날도 있어서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한국야구가 몸에 배어있다 보니까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한국에서는 경기 전에도 쉴 수 있는 상황이 있는데 일본은 수비훈련도 다 함께해 쉬는 시간이 일정치 않았다.
- 올해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면.
50점 밖에 못 주겠다. 팀 선수나 코칭스태프, 프런트와 많이 친해졌다. 거기에 대해서는 50점을 주고 싶다. 하지만 당연히 내가 기대를 많이 받고 갔기에 올해 성적은 당연히 내야하는 것이었다. 작년 시즌이 끝나고 2달 동안 놀다시피 했다. 그 2개월이 너무 아쉽다. 그렇지만 올해 뛰면서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 올해보다 좋은 성적이 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일본 투수들에 대해서는 부담감을 느꼈는지.
상대 투수에 대해 처음엔 부담감이 더 많았다. 한국을 대표해서 나갔기 때문에 내가 못 하면 후배들의 길을 막는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 부담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런데 처음 야구장에 가서 놀랐다. 우리 홈 구장(오사카 돔)이 돔 구장이었다. 내 야구만 했으면 됐는데 잘 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아쉽다. 17경기 만에 홈런 나왔다. 첫 경기서 안타와 타점 나왔는데 두 번째 경기부터 홈런을 노리게 되더라.
- 전 경기에 출장했는데 소감은.
초반에 많이 힘들었다. 초반에 10여 경기 나가다 지명타자로 나갔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목 뒤가 많이 올라왔다. 그때 성적이 안 좋았기에 빠지면 도망가는 느낌이 들 것 같아서 뛰었다. 그러다 보니 오기가 생기더라. 한 경기도 쉬고싶지 않고 약해질 것 같았다. 마지막에 바뀐 감독님이 물어 오더라. 그때 "어떻게든 나가고 싶다. 끝까지 기록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에는 정말 피곤했다. 최하위 확정된 이후에는 상위팀은 우리와 붙으면 무조건 이기려고 했다. 그때 한 달동안 힘들었다.
- 일본에서 친해진 선수가 있는가.
동생같이 생각하는 선수 2명이 있다. 한국 연예인도 좋아하는 선수다. 58번 하지모토 선수와 가장 친하다. 어린 친구들과 많이 친해졌다. 어떻게 하면 전경기를 뛸 수 있는지 이런 노하우를 전해줬다.
- 타격 폼이 시즌 중에도 바뀌었다.
성적이 안 나오면 타격폼이 작아진다. 사실 한국시절에는 타석에서 고민한 적이 없었다. 볼이든 스트라이크든 타이밍 맞으면 쳤다. 초반에 보니깐 나도 모르게 공을 놓치고 있더라. 많이 힘들었었는데 '작아지지 말자'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 지금 가장 하고싶은 건 무엇인가.
가족들과 식사를 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원정 다니며 놀아주고 싶다. 아기와 놀아주고 시간 보내고 싶다. 먹고싶은 건 맛집 같은거 가고싶다.
- 타점왕은 차지했지만 홈런왕 타이틀은 놓쳤다.
홈런왕을 놓친 건 아쉽진 않다. 내 목표는 타점왕, 타점을 많이 올리는 4번타자가 되고 싶었다. 100타점이 목표인데 이걸 못 해서 아쉬울 뿐이고 타율 3할도 못 해서 아쉽다. 첫 해였기에 투수를 많이 봤기에 내년은 확실히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144경기 동안 많은 투수들과 부딪혔다. 투수들의 데이터가 머리에 들어왔다.
- WBC에 출전할 가능성이 높다.
가게 된다면 열심히 해야 한다. 이제는 대표팀에서 선배가 될 것 같은데 가게되면 후배들을 잘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 내가 막대시절 대표팀에서 배운 것들을 후배들에 전수해주고 싶다. 그리고 한국 야구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
- 체중이 좀 빠진 것 같다.
야구하면서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시즌 중 살이 빠진 건 처음이다. 올 시즌은 안 찌려고 노력했다. 유지를 잘 한 것 같은데 올 겨울에 열심히 준비해서 내년에 더 좋은 모습 보여주겠다.
- 팀이 최하위에 그쳤다.
오릭스가 솔직히 약한 팀은 아니다. 그런데 부상선수가 나오다 보니 약할 수밖에 없는 팀이 됐다. 에이스 가네코가 부상으로 빠져버리니 팀이 흔들리더라. 게다가 후반기 1,2,3선발이 다 빠져버렸다. 올해 6선발 요원인 기사누키 선수가 혼자 마운드를 지켰다. 선수인 내가 답답할 정도였다. 한 경기 이기기가 너무 힘들더라.
- 나카무라(세이부, 올 시즌 홈런왕) 선수와 홈런 라이벌 관계다.
나카무라, 홈런을 치기 위한 타자다. 힘도 좋고 홈런을 위한 기술이 정말 좋다. 홈런을 50개 치면서도 삼진먹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홈런 스윙을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게 부럽다. 나도 그런 스윙을 하고 싶었는데 힘들다. 타율은 낮아도 홈런을 만드는 걸 보니 좋은 선수다.
- 그렇다면 가장 스트레스를 받은 건 무엇이었나.
야구공 반발력, 그리고 뒤에 있는 심판 때문에 스트레스 받았다. 한국야구 심판의 수준이 높다는 걸 느꼈다. 우리나라 심판들은 선수 출신이라 선수 마음을 아는데 일본은 공부를 해서 (심판이) 됐기에 이해하기 힘든 판정이 있었다. 내가 생각할 때 분명 볼인데 스트라이크 잡아주면 힘들어진다. 오히려 포크볼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 오카다 감독이 물러나고 사령탑이 바뀌었다.
새 감독(모리와키)님이 코치 시절일 때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감독님도 상위팀 있다 오셔서 보는 눈이 높더라. 야구를 많이 아시는 것 같더라. 오릭스에 있는 후배들이 많이 배울 것 같다. 오카다 감독님은 근엄하지만 정말 좋은 분이셨다. 그런데 어린 선수들은 무서워하더라. 지금 감독님은 다가가기 좋은 감독님이다. 분위기는 좋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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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정송이 기자,ouxou@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