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준 플레이오프 기간동안 롯데의 화두는 '믿음의 야구'였다. 한 번 믿음을 준 선수는 끝까지 기용하는 게 롯데 양승호 감독의 용인술이다.
그래서 실책과 주루미스를 저질러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베테랑 조성환에 대해서도 양 감독은 "고참 선수는 결정적일 때 한 방을 해 준다. 선수라면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는데 젊은 선수들은 거기에서 벗어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나이가 있는 선수는 금방 회복을 한다"면서 적극 두둔했다.
또한 롯데는 1차전부터 4차전까지 선발 라인업이 거의 바뀌지 않았다. 1차전에서 부상을 입은 포수 강민호만 용덕한으로 교체되었을 뿐 나머지 선수들은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이러한 롯데의 야구에 대해 일부에선 "단기전에서 지나친 믿음은 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시리즈 전적 2승 1패로 앞서던 4회, 양 감독은 그 동안 유지하던 '믿음' 대신 과감하게 선수를 교체하는 달라진 용인술을 선보였다. 그리고 승부처에서 교체 투입된 선수들이 활약을 펼쳐 롯데의 4-3 역전승을 이끌었다.
롯데는 0-2로 끌려가던 4회 무사 1,2루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타석에선 박종윤은 페이크 번트 슬래시를 두 번이나 시도했으나 실패, 삼진으로 물러났고 롯데는 그 이닝에서 점수를 못 했다. 당시 박종윤은 2스트라이크를 당한 뒤 조원우 주루코치에 사인을 다시 확인하는 모습을 보여줘 사인미스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냈다. 경기 후 양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박종윤은 희생번트 사인을 슬래시로 잘못 읽었고, 결국 다음 수비이닝에 손용석으로 교체됐다.
보통 양 감독은 선수가 실수를 해도 곧바로 교체하지 않는다. "실수한 본인이 가장 힘들 것이다. 만회할 기회도 없이 교체하면 얼마나 자책을 하겠냐"는 것이 양 감독의 정규시즌 때 말이지만 큰 경기에선 냉정하게 선수 교체를 지시했다.
결국 원래 박종윤이 있던 5번 타순에서 승부에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왔다. 1-3까지 추격한 8회 1사 만루에서 정훈이 타석에 들어설 차례였다. 여기서 양 감독은 황성용을 대타로 내는 승부수를 던졌다. 정훈은 시즌 홈런이 2개가 있을 정도로 일발장타가 있는 선수고, 황성용은 아직 데뷔 후 홈런이 없다. 일견 의구심을 자아내는 선수 교체였으나 황성용은 침착하게 볼넷을 골라내 한 점차까지 추격했다. 그리고 전준우의 희생플라이가 이어져 롯데는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가는 데 성공했다.
양 감독이 정훈 대신 황성용을 투입한 건 타격 솜씨가 아닌 선구안을 봤기 때문이다. 단순 장타력은 정훈이 낫지만 그는 올 시즌 단 3개의 볼넷밖에 얻지 못하면서 삼진은 42개 당했다. 반면 황성용은 5개의 볼넷을 얻었고 17번 삼진을 당했다. 마침 홍상삼의 제구가 흔들렸던 상황이기에 선구안이 좀 더 뛰어난 황성용을 투입한 것이다.
또한 발목 염좌로 불가피하게 경기 중 빠지긴 했지만 조성환 대신 들어간 박준서는 4타수 2안타 2득점으로 4차전 MVP로 선정됐다. 교체 투입된 선수들이 제 역할을 충분히 한 것이다. 시즌 때와는 다르게 냉정한 선수교체를 보여준 양 감독이 SK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또 어떤 모습으로 변신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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