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현(34·롯데)에 대해 묻자 정우람(27·SK)은 난감한 듯 살짝 웃었다.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이 된 묘한 상황 탓이다. 하지만 부담은 없다고 했다. 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도전자의 자세로 덤벼보겠다는 패기를 물씬 풍긴다.
정대현은 지난해까지 정우람과 SK의 필승 계투진을 이뤘다. 한쪽이 먼저 마운드에 오르면 다른 한쪽이 그 뒤를 받쳤다. 정우람이 SK 불펜에 본격적으로 가세한 2005년 이후 두 선수는 7년 동안 총 111세이브와 193홀드를 합작했다. 좌·우 타자를 가리지 않는 두 선수의 맹활약 속애 SK는 그 유명한 ‘벌떼 계투진’을 완성할 수 있었다.
온갖 역경을 같이 이겨내서 그런 것일까. 정우람은 정대현을 자신의 ‘멘토’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지금껏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정대현의 도움을 손꼽을 정도다. 정우람은 “(정)대현이형한테 정말 많이 배웠다. 침착함, 경기운영, 몸 관리는 물론이고 중간 투수로 가져야 할 덕목까지 대현이형한테 배운 것이 많다. 그래서 나도 이렇게 많이 좋아졌다”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감정은 잠시 접어둬야 할 때가 왔다. 이제는 적으로 부딪힌다. SK와 롯데는 오는 16일부터 플레이오프에 돌입한다. 서로를 쓰러뜨리지 못하면 가을야구는 그대로 끝이다. 특히 마무리 투수 구도가 관심을 모은다. 유니폼을 바꿔 입고 친정팀을 조준하는 정대현에 맞서 정대현의 후계자격인 정우람이 나서는 그림이다. 박빙 승부가 예상되는 만큼 두 선수의 활약 여부에 따라 플레이오프 판도가 요동칠 수도 있다.
일단 정대현이 준플레이오프에서 먼저 기세를 올렸다. 3경기에서 1승2세이브 평균자책점 0의 완벽한 투구로 롯데의 플레이오프행을 이끌었다. SK도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는 맹활약이다. 이에 대해 정우람은 “경기를 보면서 ‘역시 대현이형이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라고 웃었다. 한편으로는 “4차전도 봤는데 내가 저 선수를 롤모델로 삼고 야구를 했다는 게 뿌듯했다”라고도 덧붙이는 정우람이다. 옛정은 분명 남아있었다.
그러나 정대현의 활약이 이어질수록 정우람도 투지 또한 불타오르고 있다. 정우람은 피로누적 증세로 시즌 막판 휴식을 취했다. 보름가량의 휴식 결과 몸 상태는 많이 좋아졌다는 게 스스로의 진단이다. 정우람은 “쉬는 동안 몸을 잘 추슬렀다. 단기전은 변수가 많다. 어느 상황에서 나갈지 모르는 만큼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했다”라고 설명했다.
SK 불펜과 정대현의 양자 구도에 대해서도 “부담스러운 것은 없다. 서로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적은 롯데 타자들이지 대현이형이나 (이)승호형이 아니다”라고 못 박으며 “준플레이오프 때 롯데 타자들을 봤으니 조금 더 준비를 확실히 해야 할 것 같다”라고 표적을 조준했다. 분명 정우람도 쉽게 물러설 생각은 없다. 그리고 그것이 멘토에 대한 예의라고 믿는 정우람이다. 마무리 대전이 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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