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아섭 타석 때는 긴장감에 심장이 쫄깃했어요”.(웃음)
그도 사람이다. 시리즈 승운을 좌우할 수 있는 첫 경기에서 한 점 차 박빙 리드 가운데 그는 제대로 된 기교투로 확실한 가교를 놓았다. 한 시즌 홀드 신기록 보유자(34홀드) 박희수(29, SK 와이번스)는 또 한 해를 보내며 괄목성장한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지난 16일 안방 문학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 2-1 살얼음 리드를 지키고 있던 8회초 박희수가 마운드에 올랐다. 올해 롯데전 10경기에서 6승 1세이브 2홀드 평균자책점 1.38을 기록한 천적 박희수는 명성 그대로 확실한 위력을 보여줬다. 특히 1번 김주찬부터 이어지는 상위 타선이라 추격 기세를 끊는 입장에서 깔끔한 호투였다.

김주찬을 상대로 1B2S 유리한 볼카운트를 점한 뒤 6구째 바깥쪽으로 흐르는 투심 패스트볼로 헛스윙 삼진을 잡은 박희수는 후속타자 정훈을 상대로 볼카운트 2B2S에서 5구째 145km 바깥쪽 직구로 루킹 삼진을 잡아냈다. 백미는 올 시즌 최다안타(158개)를 기록한 3번 타자 손아섭과의 대결이었다.
손아섭은 5구째 풀카운트가 되자 파울 커트 세 개로 박희수를 괴롭혔다. 워낙 컨택 능력이 뛰어난 만큼 박희수는 포심-투심 패턴에서 살짝 벗어나 9구 째 결정구로 낮게 떨어지는 느린 커브를 던졌다. 손아섭은 이를 당겨쳤으나 결국 타이밍 싸움에서 밀려 1루 땅볼에 그쳤고 박희수는 삼자범퇴로 제 임무를 마쳤다.
원래 박희수는 1군에서 계투로 두각을 나타내기 전 2군에서 좌완 선발 요원으로 육성되던 투수였다. 빠른 공보다는 안정된 제구력과 완급조절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팀 내 평가가 높았으나 당시 SK에는 이승호(롯데), 전병두, 고효준, 정우람 등 뛰어난 좌완이 많아 좀처럼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박희수다. 계투로 뛰며 제구되는 포심 패스트볼과 서클 체인지업처럼 떨어지는 투심 패스트볼을 즐겨 쓰던 박희수는 1군에서 자주 사용하지 않던 커브를 꺼내 손아섭을 땅볼처리하는 노련미를 보였다.
물론 박희수에게 9구까지 흘러간 손아섭과의 대결이 마냥 편했을 리는 없다. 경기 후 박희수는 손아섭과의 대결에 대해 “내색은 안 했지만 긴장감 때문에 심장이 쫄깃해진 느낌이었다”라며 농을 던졌다. 그러나 박희수는 자신이 숨기고 있던 완급조절 능력으로 상대 중심타자를 범퇴하며 마무리 정우람에게 세이브 기회를 넘겨줬다.
누구나 긴장감과 일말의 두려움 없이 삶을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성공하는 예와 실패의 차이는 얼마나 많은 무기를 갖고 잘 준비했는가에 달렸다. 2군에서 오랫동안 연마했던 기술 중 하나를 꺼내든 박희수의 기교투는 SK의 플레이오프 첫 경기 숨은 공로로 꼽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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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