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 절치부심 김광현, ‘부활투의 재구성’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2.10.17 06: 52

신문기사를 봤다. 긍정적인 내용보다는 부정적인 내용이 더 많았다. 예전 같았으면 당연했을 1차전 선발임에도 물음표가 끊이지 않았다. “이만수 감독의 도박”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뭔가를 보여줘야 했다.
김광현(24·SK)은 칼을 갈았다. 그리고 그 칼은 롯데 타자들뿐만 아니라 의문을 달고 있었던 모든 사람들로 향했다. 김광현은 16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 선발로 나서 6이닝 동안 95개의 공을 던지며 5피안타 1볼넷 10탈삼진 1실점하며 승리투수가 됐다. “힘들지 않겠느냐”라는 세간의 예상을 완벽하게 비웃었다.
▲ 구속과 제구, 모두 살아났다

김광현은 올 시즌 16경기에 나서 8승5패 평균자책점 4.30으로 부진했다. 예전의 구위가 아니었다. 부상 후유증 때문이었다. 왼 어깨 통증 재활로 인해 6월에나 모습을 드러냈고 통증 재발로 한 차례 2군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직구 최고 구속은 140㎞ 초반까지 떨어졌다. 그래서 “완급조절을 해야 한다”라는 말도 있었다. 파워피처 김광현에게는 당혹스러운 현실이었다.
1차전을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까지도 김광현의 어깨 상태는 불투명했다. 김광현은 11일 있었던 자체 청·백전에서 모창민에게 홈런을 맞아 2이닝 2실점했다. 당시 던진 구종을 묻는 질문에 김광현은 “132㎞짜리 직구”라고 웃었다. 전력을 다하지 않는 경기이지만 예전 구속을 찾는 것을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이 또한 연막이었을까. 불과 5일 뒤 김광현의 최고 구속은 151㎞까지 치솟았다. 직구 51개의 평균 구속은 147㎞였다. 한창 좋을 때와 비슷한 수치다.
김광현은 1차전 후 “올해 들어 어깨 상태가 가장 좋았다. 계속 이랬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1회부터 싱싱한 직구를 마음껏 던졌다. 롯데 타자들은 생각보다 빠른 김광현의 직구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1회 첫 타자 김주찬부터가 그랬다. 높은 공에 배트를 뺐는데도 공에 맞았다. 예상보다 공이 빠르게 들어왔음을 시사하는 장면이다.
롯데 타자들은 2010년 김광현이 아닌 2012년의 김광현을 가정했다. 휴식기가 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지 구속이 올라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결국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빠른 직구에 허를 찔려 그냥 바라보기만 한 타자도 많았다. 게다가 우타자 몸쪽을 파고드는 제구도 잘 됐다. 배트가 나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 회심의 무기 투심, 제대로 통했다
그러자 슬라이더의 위력이 배가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최고 141㎞, 평균 135㎞의 고속 슬라이더가 되돌아왔다. 슬라이더의 제구도 좋았다. SK 전력분석팀에서 제공한 자료를 보면 김광현은 총 23개의 슬라이더를 던졌다. 그 중 13개가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거나 걸쳤다. 높은 공은 거의 없었다.
여기에 우타자들에게는 투심 패스트볼도 섞었다. 김광현은 전형적인 직구와 슬라이더 ‘투 피치’ 유형의 투수다. 그러나 구종 욕심은 여전히 많다. 체인지업 그립을 잡아보기도 하고 고등학교 때 던졌던 커브를 다시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그리고 커브는 비트는 동작부터 쓰는 근육까지 확연히 차이가 난다. 모든 구종을 완벽하게 던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광현은 이날 체인지업을 단 하나도 던지지 않았고 커브도 6개만 섞었다. 대신 직구와 비슷한 매커니즘을 가지고 있는 투심을 이날 상대적으로 많이 던졌다. 홈 플레이트 근처에서 조금씩 떨어지며 타자들의 방망이를 유도해냈다. 가뜩이나 김광현의 빠른 직구에 당황한 롯데 타자들은 좀 더 느리게 날아오는 투심에 손을 댔다가 본전을 찾지 못했다. 김광현은 경기 후 “3번째 구종이 생겨서 기분이 좋다”라고 했다.
분수령은 2회였다. 박종윤 전준우 황재균이라는 만만치 않은 타자들을 모두 삼진으로 돌려 세웠다. 자신의 공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계기였다. 적극적인 승부를 이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호전된 어깨 상태, 자신감을 통해 얻은 구속 회복과 제구력, 그리고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굳은 다짐과 투지는 한 곳에 어울려 김광현의 부활투를 만들어냈다.
이후 김광현은 5회까지 흠잡을 곳 없는 내용으로 호투했다. 비록 6회 1실점을 하긴 했지만 5회 2사 문규현을 상대할 때 잠시 쥐가 난 것이 변수로 작용했다. 김광현은 “몸을 거의 풀지 못하고 마운드에 올랐다”라고 털어놨다. 김광현의 2012시즌은 지금부터 시작일 수도 있다.
skullboy@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