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속단은 이르다. 이제 플레이오프 1차전이 끝났을 뿐이다. 1차전에서 SK가 승리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결정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도 가정은 할 수 있다. SK가 시리즈에서 승자가 된다는 가정하에, 살아난 김광현(24·SK)을 보는 삼성의 속내다.
김광현은 16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선발 등판해 6이닝 5피안타 10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했다. 2008년 10월 31일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5차전 이후 4년여만의 포스트시즌 승리다. 김광현은 경기 후 “올해 들어 가장 어깨 상태가 좋았던 것 같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수치 자체도 좋았지만 내용에 더 주목할 만하다. 힘이 넘쳤던 좋을 때의 모습을 일정 부분 회복했다. 직구 최고 구속은 151㎞까지 나왔고 평균 구속은 147㎞에 이르렀다. 문학구장의 스피드건이 다소 후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정규시즌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변화다. 직구 구속이 향상되자 슬라이더도 덩달아 위력을 되찾았다. 자신감도 넘쳤고 투지 또한 롯데 타자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이로써 SK는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의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또 김광현 카드가 롯데 에이스인 쉐인 유먼을 이겨낸 것은 1승 이상의 의미가 있다. 라이언 사도스키, 이용훈이 부상으로 이탈한 롯데다. 송승준을 2차전 선발로 쓰면 3차전부터는 낼 선발 카드가 마땅치 않다. 반대로 SK는 2차전 선발로 내정된 윤희상을 비롯, 마리오 송은범이 버틴다. 1차전에서 채병룡 카드를 아낀 것, 준플레이오프에 기세를 탄 롯데의 분위기를 끊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소득이다.
내심 한국시리즈 진출팀이 최대한 많은 힘을 빼길 바라는 삼성이다. 그런데 김광현이 시리즈를 조기에 종료시킬 수 있는 판을 깔아준 셈이 됐다. 게다가 만약 SK가 내부적 목표였던 ‘3승1패’ 이상의 성적으로 롯데를 누른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김광현은 충분한 휴식을 취한 채 한국시리즈 1차전에 나설 수 있다. 삼성으로서는 '잠재적' 상대의 기세가 살아난 것이 껄끄러울 수도 있다.
삼성이 지난해 SK를 제압할 수 있을 것은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힘으로는 세밀한 플레이에서 장점이 있는 SK를 이겨내기 어렵다. 반면 삼성은 상대를 윽박지르는 마운드와 타선의 펀치력이 있었다. SK라는 단단한 성의 벽을 기어오르기 보다는 그냥 성문을 뚫어버렸다. 아무리 조직력이 탄탄한 SK라도 이런 삼성에는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지난해 SK는 이런 삼성의 힘에 대항할 수 있는 카드가 없었다. 그 중에서도 김광현이 정상적이지 않았던 것이 뼈아팠다. 그러나 플레이오프 1차전의 구위를 이어갈 수 있다면 힘대힘으로 붙어볼 수 있는 하나의 카드가 생긴다. 2010년에 이어 2011년에도 삼성을 상대로 별 재미를 못 봤던 김광현이지만 삼성이 경계해야 할 대상 중 하나로 떠오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SK가 시리즈에서 승리해 이런 삼성의 경계를 현실화시킬 수 있을지, 나머지는 김광현의 동료들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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