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인천, 김태우] 엄연히 그라운드에서는 적이다. 그러나 그라운드 밖을 벗어나면 동고동락을 같이 했던 동반자다. 그래서 긴장감 속에서도 유쾌함을 잊지 않는다. 이호준(36·SK)과 정대현(34·롯데)의 사이가 그렇다.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SK에서 활약했던 정대현은 올 시즌을 앞두고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을 얻어 롯데로 이적했다. 롯데의 베팅은 대성공이었다. 정대현은 준플레이오프에서 1승2세이브 평균자책점 0의 맹활약으로 시리즈 MVP를 따내며 기세를 올렸다. 부상으로 전반기를 통째로 날린 것에 대한 속죄투였다. 정대현은 “SK는 완성된 팀”이라고 하면서도 “시즌 중반부터 합류해서 그런지 아직 힘이 남아있다”라며 친정팀을 향해 날을 세웠다.
하지만 10년 이상을 함께 했던 동료들과는 여전히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이호준과는 통화도 하면서 안부를 묻는 사이다. 워낙 허물이 없어 농담도 자주 주고받는다. 그런데 어느새 둘의 대화 내용이 ‘입담 대결’로 번지고 있다. 플레이오프를 지켜보는 또 하나의 재밌는 관전 포인트다.

선공은 ‘빅 마우스’ 이호준이 날렸다. 이호준은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 참석해 “정대현 공략법이 있다”라고 해 취재진의 귀를 모았다. 그러나 농담이 섞인 말이었다. 이호준은 “정대현이 다혈질이다. 내가 희생하겠다. 약을 많이 올려 몸에 맞는 볼로 출루하는 것으로 (정대현과) 상의를 마쳤다”라며 좌중을 폭소케 했다.
그렇다면 1차전 이후에는 어땠을까. 선제 솔로 홈런을 치며 팀의 1차전 승리를 이끈 이호준은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이호준은 전날 팀이 진 탓에 등판하지 못한 정대현을 의식하기라도 하듯 “오늘도 푹 쉬라고 전해줬다”라고 했다. 그러나 정대현의 답장도 만만치 않았다. 이호준은 “대현이가 ‘쉬면 좋다. 대신 내가 나가지 않을 정도의 큰 점수차로 이기겠다’라고 하더라”라며 고개를 저었다. 결국 진짜 승부는 그라운드에서 가려야 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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